고양이의 한 [5] by 조재형

읽을꺼리 2007. 5. 8. 23:54 posted by 조재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10.

나는 예전부터 생각했었다. 꿈이란 것은 온몸이 극장좌석에 꽁꽁 묶인 채 원치도 않는 영화를 억지로 보는 것과 같다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자신의 의지로 꿈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알 수 없는 복잡한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터무니없이 꿈이 끝나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술에 취해 강아지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씹어 먹던 그 날 밤에 나는 악몽을 꿨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도망칠 수 없는 끔찍한 악몽을.


꿈 속의 배경은 시골에 있던 우리집이었다. 명색이 악몽인데 바로 그 장소 말고 더 어울리는 데가 또 어디 있을까?

마당에 아내와 동우가 있었다. 아내는 젖은 빨래를 빨랫줄에 널고 있었고, 동우는 마루로 올라가는 굵은 돌계단에 앉아 포켓몬스터 그림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이사오던 날 봤었던 냐옹이가 피카츄 목을 물어뜯는 자극적인 표지의 동화책.

동우가 읽고 있는 동화책 제목은 마치 불행을 암시하는 복선같았다. 피카츄 조심해! 냐옹이 화났다! 그렇다. 화난 고양이는 정말로 위험한 존재라는 것은 동화책에도 나오는 아주 기초적인 상식인 것이다.

동화책을 읽고 있던 동우가 아내에게 물었다. "엄마, 고양이 인제 안 와?"

"왜?" 아내는 빨래를 줄에 거느라 동우를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심심해."

"오겠지."

"아빠가 그랬는데, 고양이들이 나한테 미안해서 안오는 거래. 나도 미안한데. 내가 그때 호떡 가지고 놀려대서."

"다음에 오면 잘 해주면 되지. 고양이들 찾아오면 엄마랑 같이 고양이한테 맛있는 거 많이많이 주자."

"......엄마," 아내는 빨래그릇에서 물에 푹 젖은 셔츠 하나를 꺼내 들고 힘껏 흔들었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셔츠가 부풀어 올라 펴졌다. 아내가 그 셔츠를 빨랫줄에 널었다. 동우가 부르는 소리를 못들었나 보다. "엄마, 엄마, 저기,"

"엄마 바쁜데 왜 자꾸 그래?" 빨래그릇에서 커다란 담요를 꺼내든 아내가 마지 못해 동우를 쳐다봤다. 붕대를 감아맨 동우의 오른손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아내가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독대였다.

장독대 위에 수십마리의 고양이들이 모여 있었다. 40마리 정도 되었다. 지난번에 지붕 위에서 섹스쇼를 벌이던 멤버들 외에 별의별 떨거지들이 죄다 모인 것 같았다. 수컷들이었다. 모두들 아내와 동우를 내려다보고 있다.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양이들 맨 앞은 내가 그토록 증오하던 어미 고양이였다. 어미 고양이도 다른 고양이들처럼 내 가족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오는 모양이었다.

어미 고양이를 선두로 해서 고양이들은 여유있는 걸음으로 장독대 계단을 내려왔다. 내 가족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일부는 사람이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나무대문을 막아섰다. 고양이들은 징그럽게 웃기만 할 뿐 아무런 소리도 없이 조용했다.

누가 봐도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놀란 동우가 포켓몬스터 그림동화책을 땅에 떨어뜨렸다. 엄마한테 쪼르르 달려가 엄마 뒤에 숨었다. "엄마, 고양이들 무서워."

아내는 갑작스런 사태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고양이들을 훑어보기만 할 뿐 속수무책이었다. 빨랫줄에 걸려던 담요를 쥐고 있는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겁먹은 동우가 아내의 치마를 잡고 칭얼거렸지만 아내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고양이들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사람들과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고양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져갔다. 싸늘하게 굳은 표정이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고양이가 막다른 길에 몰린 쥐를 바라보는 표정, 호랑이가 덫에 걸린 토끼를 바라보는 표정, 주사기를 든 실험실 연구원이 철창 속의 원숭이를 바라보는 표정.

"야 이 새끼들아, 니들 뭐야." 아내가 눈치를 살피며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에 두려움이 실려 있었다. "안 꺼져? 저리 안 가? 죽고 싶어?"

고양이들은 아내의 협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 쪽으로 걸어왔다.

아내가 빨래그릇을 걷어찼다. 속에 든 빨래가 쏟아지고, 빈 그릇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당에 굴렀다. 몇몇 고양이들이 놀라서 뒤로 물러났을 뿐 대부분은 꿈쩍하지 않았다. 이제 거리는 4∼5미터 정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아내는 천천히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아내의 치마를 잡고 있던 동우도 따라갔다. 동우는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콧물이 주르륵 흘러 입 안으로 들어갔다. 보통 때였으면 아내가 정성스럽게 콧물을 닦아 주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비상사태였다. 아내는 마루 쪽으로 뒷걸음질쳐 가고 있었다. 달려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달리기 시작하면 약삭빠른 고양이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 즉시 달려들어 결판을 냈을 것이다.

고양이들이 다가왔다. 어미 고양이가 동우가 떨어뜨린 포켓몬스터 동화책을 밝고 지나갔다. 냐옹이가 피카츄를 물어뜯는 동화책 표지 위에 어미 고양이의 발자국이 찍혔다. 그 뒤로 수십마리의 수컷 고양이들 발자국이 이어졌다. 이젠 정말 아내와 고양이들 거리가 지척이었다. 고양이가 맘먹고 훌쩍 뛰어오르면 바로 아내를 덮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다.

고양이들도 그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제는 뜸들이는 시간이 끝났다는 신호일까?

바로 그 때 아내가 손에 들고 있던 담요를 고양이들 쪽으로 냅다 던졌다. 물에 젖어 무거워진 담요는 멀리 날아가진 못했지만, 어미 고양이를 포함해서 일곱 마리 정도의 고양이들이 담요 속에 묻혀 버렸다. 마당에 떨어진 담요 주위의 고양이들이 순간적으로 놀라서 흩어졌다. 담요 속에서는 갇혀버린 고양이들이 나오려고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아내가 황급히 뒤로 돌아섰다. 치마를 잡은 채 콧물을 흘리고 있던 동우를 힘껏 안아 올렸다. 그와 동시에 아내는 마루 쪽으로 뛰쳐 나갔다. 아내는 눈을 부릅 뜨고 있었다. 오직 방 안으로 피신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을 것이다. 몇걸음만에 마루 위로 올라서는데 성공했다.

"엄마! 고양이가 쫓아와! 빨리, 빨리, 빨리!" 아내의 어깨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동우가 엄마를 재촉했다.

담요 때문에 순간적으로 흐트러졌던 고양이들이 정신을 차리고 아내를 쫓아오고 있었다. 담요 속에 있던 고양이들도 다 빠져나와 인간사냥에 동참했다.

젖은 담요 속에서 빠져 나오느라 온몸의 털이 물기에 눌러붙은 어미 고양이가 처음으로 울부짖었다. 악몽 속에서 나는 그 고양이가 내지르는 소리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디서 감히 저 년이 잔머리를 굴려! 뭐하는 거야, 니들! 빨리 가서 저 년을 잡아! 멀뚱멀뚱 서있으라고 니들한테 다리 벌린 줄 알어? 어서 빨리 저 씨발년을 잡으란 말야!" 갑작스런 아내의 반격에 대책없이 당하고 만 것이 분한 듯 소리를 질러댔다.

동우를 안고 있는 아내가 신발을 신은 채로 황급히 마루를 뛰어 다녔다. 한쪽 팔은 동우를 안고, 나머지 한쪽 팔이 힘겹게 안방 문을 잡았다. 안방 문은 가늘고 긴 나무막대들이 가로세로 촘촘히 얽혀서 만들어진 문짝에 문풍지가 발라져 있는 미닫이 문이었다. 급하게 문을 잡느라 아내가 잡은 문 손잡이 주위의 문풍지에 구멍이 뚫렸다. 아내가 문을 왼쪽으로 밀쳐 열었다.

아내가 안방으로 발을 내딛었을 때, 쫓아온 고양이들 중 제일 선두에 있던 놈이 아내의 등을 뒤에서 덮쳤다. 갑작스런 충격에 아내는 동우를 안방 바닥에 떨어뜨렸다. 동우 위로 아내가 엎어졌다. 밑에 깔린 동우가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붕대를 감은 동우의 오른손이 아내의 팔에 깔려 있었다. 손등의 붕대가 빨갛게 물들었다. 아내를 덮친 고양이가 아내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졌다. 그 하얀 목에 금새 핏물이 흘러 내렸다. 엎어진 자세에서 아내는 몸을 돌려 고양이 몸통을 잡았다. 놈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고양이는 입을 꽉 다문 채 발톱으로 아내의 몸을 마구 할퀴어 대고 있었다. 아내의 옷 등쪽이 길게 찢어졌다. 아내가 있는 힘껏 몸부림을 치며 고양이 머리통을 잡고 밖으로 떼어 내려 애썼다. 아내의 입에서 고통의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내가 팔에 힘을 주면 줄수록 목에 박힌 고양이 이빨이 전해주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 정도로 심해졌을 것이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아내가 온 집안이 떠나갈 만큼 큰 비명소리를 질렀다. 뜨거운 핏물로 범벅이 된 목에 핏줄이 불끈 솟았다. 경직된 아내의 팔이 드디어 고양이를 목에서 떼어냈다. 그대신 아내의 목 한웅큼이 떨어져 나갔다. 김이 피어나는 뜨거운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아내는 고양이를 집어 던지고는 황급히 일어섰다. 엄마 밑에 깔렸던 동우는 바닥에 엎어진 채 울고 있었다. 아내는 동우를 돌볼새도 없이 서둘러 안방 문을 닫았다. 그리고 오래되어 녹이 슬어있는 문빗장을 걸어 잠궜다.

아내는 서랍장 위에 놓인 스탠드를 집어 들었다. 조금 전까지 사람 목을 물고 뜯느라 입가에 피가 잔뜩 묻은 고양이를 향해 휘들렀다.

"씨발놈아, 저리 가!"

고양이는 아내가 휘두르는 스탠드를 요리조리 피해다녔다. 아내는 방 구석에 달아난 고양이한테 스탠드를 집어 던졌다. 쇠로 만들어진 무거운 스탠드 손잡이가 고양이 목에 떨어졌다. 고양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방바닥에서 떼굴떼굴 굴렀다. 아내는 고양이 옆에 떨어진 스탠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에서 지랄을 떨고 있는 고양이를 내리쳤다. 고양이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네 번을 더 후려치자 고양이는 움직임을 멈췄다. 몸통은 납작해져 있었고, 머리는 터져 있었다.

아내는 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는 동우에게 다가갔다. 아이의 오른손 붕대는 예전의 하얀색이 아니라 온통 피로 물든 빨간색이 되어 있었다. 아내는 동우를 껴앉고 소리내어 울었다. "이리와 동우야. 엄마한테서 떨어지면 안돼."

"엄마, 목에서 피난다."

"괜찮아. 조금 있으면 다 나아." 아내는 목덜미로 손을 갖다댔다. 상처에 손이 닿아서 아내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아내는 목에 닿았던 손을 놀라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손이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빨간 페인트 통에 한참을 담궜다 꺼낸 손 같았다. 아내의 눈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조금 있으면 다 나아."

고양이들은 아내와 동우에게 이 상황을 곰곰히 따져볼 여유를 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고양이들이 닫힌 안방 문 앞에 몰려와 있었다.

"야 이년아, 문 열어!"

"독 안에 든 쥐 꼬라지구만."

고양이들 발이 문풍지를 푹푹 뚫고 들어왔다. 문짝은 금새 구멍 투성이가 되었다. 뚫린 구멍으로 고양이들이 눈을 들이대고 안방을 엿보았다다. 옛날에 전통혼례를 올린 신혼부부의 첫날밤에 신방을 엿보려고 발버둥치는 음큼한 동네사람들 같은 모습이었다. 문짝 구멍에 들이댄 고양이 눈알들이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문짝에 눈이 달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고 년 참 탐스럽게도 생겼다."

"조금만 기다려. 네 보지를 물어뜯어 줄 테니까."

아내와 동우는 부둥켜 앉고 울면서 방문의 구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양이들의 붉은 눈알을 두려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잠시 후 고양이들 눈이 문짝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태풍 전의 고요 같았다. 아내와 동우는 문짝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갑자기 문짝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정말로 부서질 듯이 순간적으로 문짝이 휘어지는 것이 보였다. 문을 고정하고 있는 녹 슨 빗장이 덜그럭거렸다. 아내와 동우는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비명을 질렀다. 보통의 교양있는 사람들이 평상시에는 도저히 낼 수 없는 품위없는 비명소리였다. 공포에 휩싸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미친듯한 날카로운 비명소리. 품위고 교양이고 체면이고 벗어버린 가식없는 순순한 공포의 비명소리.

고양이들이 문짝을 박살내려고 문에 달려들어 몸통을 세게 부딪힌 것이다. 화들짝 놀란 아내가 문으로 달려갔다. 문짝 양 옆 가장자리를 손으로 눌렀다. 문이 그냥 부서지게 놔둘수는 없는 것이니까.

쿵쿵! 고양이들의 몸통 박치기가 계속 이어졌다. 그럴때마다 아내는 움찔했다. 문짝은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팔힘만으로는 부족했던 아내는 아예 몸 전체로 몸짝을 눌렀다. 그래도 고양이들이 문짝에 부딪치는 순간에는 여지없이 문이 흔들렸다. 문틀을 이루고 있는 나무막대들이 금새 부러질 것만 같았다.

안타까운 동우가 엄마를 도와주려고 문짝을 몸으로 막았다.

아내는 동우에게 소리쳤다. "안돼! 저리가, 동우야. 다쳐!"

"이리로 고양이들 들어오면 어떡해." 울쌍이 된 동우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가 막을 수 있어." 아내가 몸을 돌려 등으로 문을 막아섰다. 두 손은 문짝 가장자리를 꼭 잡고 있었다. 고양이들이 부딪히자 아내의 몸이 비틀거렸다. 이내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지만 아내의 얼굴에는 불안한 표정이 가득했다. 점점 힘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고양이들 때문에 정신이 없는 듯 했지만, 목의 상처에서 너무나도 많은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동우야, 저기 핸드폰 갖고와."

동우가 서랍장 위 TV 옆에 놓여 있는 핸드폰을 재빨리 가져와 아내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아내가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전화가 119 구조대로 연결되었다. 아내는 위기의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또박또박 현재 상황과 주소를 불러 주었다. 전화를 받고 있는 119 접수요원은 아내의 설명이 잘 이해 안되는 것 같았다. 아내가 되풀이해서 고양이 얘기를 해야만 했다. "내 말 못 알아들어요? 고양이라구요, 고양이! 고양이가 우리 가족을 죽일려고 그런다구요. 나랑 내 아들 말이에요. 당신 귀 먹었어? 빨리 이리로 와서 우릴 살려달란 말야!" 답답했던 통화가 겨우 끝났다. 아내가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나에게 핸드폰이 있었다면 아내는 나에게도 전화를 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때 나는 핸드폰이 없었다. 시골로 이사오면서 외부와 완전히 단절한 채 집필에만 전념한답시고 핸드폰을 처분해 버린 것이다. 그 때 내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아니 핸드폰이 없었더라도 읍내 시장에서 집으로 전화 한통화만 했더라도 사정은 이렇게 나빠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문짝이 흔들거렸다. 아내는 기진맥진한 듯 했다. 목에서 흐른 피가 등을 지나 문짝의 하얀 문풍지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내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문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온 정신을 등이 닿아있는 문짝에 집중시키느라 시선은 방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동우는 훌쩍거리면서 아내가 집어던진 핸드폰을 주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자꾸만 눈길은 불안하게 버티고 서있는 엄마를 향하곤 했다. 엄마의 핑크색 블라우스는 목에서 새어나온 피로 물들어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불현 듯 동우는 무슨 소리를 들었다. 고양이들이 문짝에 부딪히는 쿵소리가 아닌 전혀 다른 소리. 무언가 조금씩 허물어지는 소리였다. 아이의 붉게 물든 붕대 위로 흙가루가 떨어지고 있었다. 동우는 흙가루의 움직임을 거슬러 올라 천장을 보았다.

천장이 뚫리고 있었다.

"엄마! 저기 천장 좀 봐!" 놀란 동우가 아내에게 뛰어 들었다. 두려운 마음에 아내를 꽉 껴앉는다.

자꾸만 위태롭게 흔들리는 문짝에 시달리고 있는 아내도 천장을 보았다. 아내의 얼굴에 절망스런 표정이 피어났다.

천장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조금씩 천장 구멍에서 흙가루가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단추구멍만하던 천장이 점점 더 넓어져 갔다.

"안돼." 아내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흘렀다.

조금씩 떨어지던 흙가루가 이제는 덩어리 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구멍이 넓어지는 속도는 흙을 긁어대는 사각사각 소리와 함께 점점 속력을 더해갔다.

넓어진 구멍으로 지붕으로 올라간 고양이들이 흙을 긁어대는 발들이 쉴새없이 들락날락거렸다. 고양이들은 신이 나서 고함을 질러댔다.

"엄마, 무서워. 우리 이제 죽는 거야?" 엄마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아니. 이제 조금 있으면 119 아저씨들 올거야. 아까 엄마가 전화하는 거 봤지? 금방 온댔어. 어쩌면 아빠도 지금쯤 집에 거의 다 왔을지도 몰라."

세차게 문짝에 충돌하는 고양이들 때문에 아내의 몸이 비틀거렸다. 아내는 등으로 문을 막고 두 손으로 문 양쪽을 단단히 잡고는 있었지만, 어쩐지 맥이 풀린 모습이었다. 천장에 난 구멍을 보는 순간부터 자신이 질게 뻔한 게임에서 공연히 헛수고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진짜 게임이었다면 그냥 쉽게 지금의 게임을 포기해 버리고 다음 게임을 다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쉽게 쉽게 되풀이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천길 낭떠러지로 아내와 동우를 몰아가고 있었다.

동우를 안심시키려고 별의별 말을 다 꾸며내면서도 아내는 천장 구멍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천장 구멍으로 고양이들이 내려올 때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았는지, 그동안 정말 운좋게도 하늘이 도와서 구조될 확률은 얼마나 될는지 헤아려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최악의 상황이 닥쳐 버렸다.

천장에서 커다란 흙뭉치가 한꺼번에 여러개 떨어져 내렸다. 안방 속에 뿌연 흙먼지가 가득 날렸다. 아내와 동우는 눈을 찌뿌린 채 두려운 순간을 맞이했다.

흙먼지가 진정되자 천장이 드러났다. 솥뚜껑만한 커다란 구멍이 천장에 나 있었다. 어미 고양이를 비롯한 20마리정도 되는 고양이들이 구멍 주위에 모여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다.

"언니, 나 왔어." 어미 고양이가 징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울음소리를 냈다. 이 년의 울음소리는 아내와 동우에게는 그저 고양이 울음소리로만 들렸겠지만, 악몽 속의 나에게는 그 뜻이 똑똑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저 암컷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사랑이 가득 넘치는 정겨움의 표시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내와 동우도 눈치챘을 것이 분명하다.

어미가 천장 구멍에서 훌쩍 뛰어내려 안방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 뒤를 이어 수컷들도 안방에 도착했다.

"결국 이렇게 될 걸 이 난리를 피운거냐? 씨발아." 수컷 중 하나가 아내에게 으르렁거렸다.

안방에 내려온 고양이들은 아내와 동우에게 다가가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우리 가족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는 것 같았다.

아내는 문짝에서 벗어나 동우를 데리고 방구석으로 갔다. 마루에 있는 고양이의 몸통 박치기 한방에 금새 문짝이 부서지며 안방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내가 마루 쪽을 내다보았다.

수십마리의 고양이들이 마루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장독대에 나타났을 때보다 그 수가 더욱 불어나 있었다. 그 많은 고양이들을 헤치고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내가 마루 위의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방문을 잡고 있는데 온정신을 쏟던 아내가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동우를 꼭 안으며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엄만 너를 사랑해. 동우도 엄마 사랑하지?"

"119 아저씨들 안오는거지? 아빠도 안오는거지? 우리 이제 죽는거지?" 동우가 눈물을 흘렸다. 피로 물든 손 붕대로 눈물을 닦았지만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엄마랑 같이 가야될 것 같다." 이제껏 목에서 그렇게 많은 피가 흘렀는데도 꿋꿋이 버텨왔던 아내가 동우를 보면서 체념의 말을 했다.

어디로 가냐는 물음 대신 동우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너희들이 원망스러워. 죽어서도 너희들을 못 잊을거야." 아내가 어미 고양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얘네들 전부 다 끌고 온거지? 우리 남편이 너한테 꼭 복수해 줄꺼야." 아내가 울고 있는 동우 얼굴에 키스했다. 동우가 엄마를 꼭 껴안았다. "동우야, 엄마가 너 끝까지 못 지켜줘서 미안하다."

동우는 아무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아내도 흐느껴 울었다.

드디어 어미 고양이가 공격명령을 내렸다. "재미없다. 확 쓸어버려."

안방과 마루에서 대기하던 고양이들이 한꺼번에 부둥켜 안고 있는 아내와 동우에게 몰려 들었다. 수십마리가 덮쳐오자 아내는 금새 방바닥으로 무너졌다. 동우를 아래로 놓고 몸으로 아이를 감싸서 최대한 고양이들의 손길을 막으려 안간힘을 썼다.

등을 내보인채 무너져 있는 아내를 수컷 고양이들이 떼로 몰려들어 공격했다. 아내는 옷이 뜯겨 나갔다. 피로 물든 블라우스도, 멋진 꽃무늬가 박혀있는 치마도 가차없이 날아갔다. 날카로운 고양이들 발톱이 아내의 하얀 피부를 할퀴고 지나갔다. 억센 고양이들 송곳니가 아내를 물어뜯었다. 아내의 등과 옆구리에서 피가 분출했다. 등 피부가 벗겨져 척추뼈가 드러났다. 아내가 격심한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곧이어 고양이들이 아내의 얼굴을 물어뜯었다. 이제 아내는 목까지 터져버려 비명소리 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저 맥없는 바람소리만 구멍 난 목에서 새어 나왔다. 아내는 핏덩이가 돼버렸다.

동우를 보호하던 아내가 옆으로 쓰러졌다. 죽음 앞에 고스란히 노출돼 버린 동우가 몸을 웅크렸다. 아내를 공격하던 고양이들 중 일부가 동우한테 달라붙었다. 옷을 찢고 맨살이 드러나자 냉혹하게 아이마저 피바다를 만들었다. 붕대가 다 풀어진 오른손도 고양이들의 먹이가 되었다.

완전히 발가벗겨진 아내와 동우를 고양이들이 물어뜯고 할퀴었다. 방 안에는 온통 죽어가며 신음하는 사람소리와 살육의 쾌감에 환호하는 고양이들 소리와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방바닥이 사람이 흘리는 핏물로 물들었다. 바닥에서 난리치는 고양이들의 몸에도 피가 흠뻑 묻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어미 고양이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였다.

고양이들에 의해 똑바로 눕혀진 아내의 몸이 남김없이 난자당하고 있었다. 어미 고양이가 아내를 둘러싸고 있는 수십마리 고양이들한테 소리쳤다. "유방이라구, 유방! 그 씹쌔기가 지 마누라한테서 제일 좋아하는 게 그 유방이라구! 거길 싸그리 터뜨려버려!"

명령대로 고양이들이 아내의 가슴을 집중적으로 물어뜯었다. 금새 가슴이 뜯겨 나가고 그 자리에서 피가 들끓었다. 파헤쳐진 가슴 속으로 가슴뼈가 드러났다.

"이 조그만 놈을 저기로 끌고 가자." 동우에게 가 있는 고양이들이 외쳤다. 고양이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신음을 내고 있는 동우를 낮은 서랍장 쪽으로 끌고 갔다.

그 순간 놀랍게도 이제는 얼굴도 가슴도 심지어는 성기까지도 뜯겨버려 온전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상태가 된 아내가 손을 뻗어 동우의 왼손을 붙잡았다. -동우의 오른팔은 고양이들에 의해 찢겨 나갔다.- 아내는 동우를 곁에서 떨어지게 할 수 없다는 듯 잡은 손을 단단히 붙들었다. 아내는 몸을 일으키려고 몸부림치기까지 했다. 발끈한 고양이들이 아내 몸 위에 올라가 더욱 세차게 물어 뜯었다. 애처롭게 몸부림치던 아내의 몸은 완전히 생기를 잃었다. 그러나 아들의 손을 움켜쥔 엄마의 손은 고양이들이 아무리 물어뜯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아내의 손목을 팔에서 뜯어냈다.

고양이들이 동우를 서랍장으로 끌고갔다. 동우의 왼손에 엄마의 오른손이 단단히 붙어있는 채로. 동우의 머리가 서랍장 바로 밑에 왔다. 서랍장에는 25인치 TV가 놓여 있었다. 고양이들 몇마리가 서랍장으로 올라갔다. 낑낑대며 TV를 동우쪽으로 밀었다. 조금씩 조금씩 커다란 TV가 동우 머리가 누워있는 서랍장 끝으로 밀려나갔다. 동우는 의식이 혼미해져서 자기 머리 위로 평소에 즐겨 보던 TV가 다가오는 것도 모른채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TV가 서랍장 끝에 다왔다. 방바닥에 있던 고양이들 몇마리가 더 가세해서 힘껏 TV를 밀었다. 서랍장 끝에서 밀려나 균형을 잃고 잠시 허공과 서랍장 사이에서 비틀거리던 25인치 TV가 떨어져 내렸다. 그 시커먼 몸체가 정확히 동우 머리 위에 떨어졌다. 단단한 물건이 퍽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동우의 머리가 TV 속에 파묻혔다. TV와 충돌하는 순간 동우의 몸이 한번 크게 꿈틀거리더니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TV 밑으로 검은 피가 흘러 나왔다.

피로 온통 젖어버린 수컷 고양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자 이젠 일이 다 끝난 거 같다."

어미 고양이가 안방을 천천히 둘러봤다. 아내와 동우가 신체 곳곳이 갈갈이 찢기고 박살난 채 완전히 죽어 있었다. "그렇군." 암컷이 껄껄대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네 자식 복수를 도와줬으니 약속을 지키시지."

"그래, 저번처럼 우리한테 다 대줘야지."

수컷들이 신이 나서 웅성거렸다. 전부들 눈이 번뜩거리며 생기에 넘쳤다.

"그래야지." 어미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간단한 일로 다리 벌릴 걸 그동안 그렇게 비싸게 굴었나?" 수컷들이 낄낄대며 웃어댔다.

"나한테는 이게 중요한 일이니까." 어미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 밖으로 나가자." 몸에 표범같은 점들이 박힌 수컷이 말했다.

"그냥 여기서 해." 몸에 피 한방울 묻지 않은 어미 고양이가 사람의 피로 질척거리는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수컷들이 어미의 제안에 당황했다. "왜? 그 새끼가 돌아올까봐 겁나? 뭐가 겁나? 마누라랑 아들새끼까지 이렇게 해놓고서. 그 놈 보이기만 하면 잡아 먹으면 되지, 안 그래?" 어미가 다리를 벌렸다. 빨간 속살이 드러났다. 암컷의 속살은 아내와 동우가 죽어가는 모습에 잔뜩 흥분해서 끈적하게 젖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수컷들이 입맛을 다셨다.

"자, 그럼 즐겨볼까?"

수컷들 수십마리가 어미 고양이에게 몰려 들었다. 하드코어 포르노쇼가 우리집 안방에서 벌어졌다.

악몽 속에서 난 그 망할 년이 섹스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아야만 했다. 수십마리의 수컷이 들락날락거리는 모습을. 어미 고양이가 방바닥과 수컷들 몸에 묻은 피를 흥건히 뒤집어 쓴 채 쉴새없이 쾌락의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지루하게 계속되던 섹스가 다 끝난 후 고양이들이 밖으로 흩어졌다. 어미 고양이는 마지막까지 안방에 남아 우리 가족의 시체에 침을 뱉은 후 여유있게 사라졌다. 나는 그 년의 가랑이에서 수십마리의 수컷 고양이가 뿜어놓은 정액이 줄줄 흐르는 것을 보았다. 역겨웠다.

악몽은 마지막 장면은 내가 읍내 시장에서 강아지를 사오던 날 황급히 안방으로 들어섰을 때 보았던 장면이기도 했다. 고양이들이 벌인 아수라장이 끝난 후의 안방 모습이 보였다. 여기저기 엉망으로 어질러진 안방이 피바다가 되어 그 한가운데에 아내와 동우가 흉칙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나는 악몽에서 깨어났다.

[6]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