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한 [3] by 조재형

읽을꺼리 2007. 5. 8. 23:47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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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슬럼프에 관한 내 생각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반은 맞았다. 슬럼프가 온 것이 틀림없다는 내 예감은 적중했다.

집필실에 들어와 노트북 컴퓨터를 켜고 어제까지 쓰다만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보았다. 머리가 무거웠다. 그 다음 문장을 어떤 식으로 이어나갈 것인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 속에 글쓰기를 방해하는 커다란 장벽이 생긴 것이다.

반은 틀렸다. 고양이를 죽이면 나를 성가시게 하던 슬럼프의 원인이 사라져 다시 원래처럼 빛의 속도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은 물거품이 되었다. 새끼 고양이를 살해하고 말았는데도, 나는 이렇게 슬럼프에 시달리고 있다! 슬럼프의 신이시여,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제 정성이 부족한 겁니까?

나는 이제 한 글자도 쓸 수 없는 지독한 슬럼프를 앓고 있었다. 노트북 컴퓨터 속의 소설 원고는 한 글자도 추가되지 않은 채 내 무능력의 명확한 증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괴로워하는 나를 아랑곳 하지 않고 유유히 흘러만 갔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훌쩍 일주일도 지났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식구들한테 글 쓴다고 속이고, 집필실에 틀어 박혀 속만 태우는 것이었다. 소설가로서의 최후를 걱정하며 마지막 힘을 다해 노트북을 켠다해도 하는 일이라곤 고작 지뢰찾기나 카드게임으로 하루를 꼬박 보내는 것이었다. 이제는 노트북 속의 소설파일을 열어보는 것조차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파일을 연다고 해도 한 문장도 떠오르지 않는 괴로움만 더해질 뿐이었다. 차리리 집필실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잠을 잤다. 정말이지 내 처지는 근로의욕을 상실한 게으른 노숙자와 다를 바 없었다.

슬럼프의 신은 새끼 고양이만으로는 성이 안 찬 것일까? 원래대로 어미 고양이를 죽였다면 이런 비참한 결과는 오지 않았겠지?

난 은근히 어미 고양이를 기다렸다. 다시 눈에 띄면 아예 요절을 내고 싶었다. 새끼 고양이를 끝장냈을 때처럼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확 불타올라서 모든 것을 제껴두고 나서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마당에 나갈 때마다 장독대를 볼 때마다 어미 고양이를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고양이는 오지 않았다.

아내도 동우도 고양이를 보지 못했다. 식구들은 아예 고양이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시골생활의 무료함을 버텨내고 있을 뿐이었다. 아내와 동우는 내가 고양이한테 한 짓을 다 알고 있는 걸까? 상관없다. 지금 내 코가 석자다. 식구들 기분까지 눈치볼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어미 고양이가 내 앞에 나타나기를 고대했다. 그래서 슬럼프의 신을 위해 내가 또다시 뭔가 뜻깊은 일을 벌일 수 있기를 소원했다.

그리고 나는 소원대로 어미 고양이를 또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6.

밤이었다.

잠을 자다 깼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내 잠을 깨운 이상한 소리는 우리 집 천장에서 나오고 있었다.

돌아누운 아내의 등쪽을 향하고 누워 있던 나는 그 소리를 따라 천장 쪽으로 몸을 뒤척였다.

천장에서 나는 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그리고 내 아랫도리를 묵직하게 만들었다. 그 소리는 여자의 신음소리였다. 그냥 신음소리가 아니라 적나라한 포르노 영화같은 데 나오는 과장된 여자의 신음소리였다. 섹스의 쾌감을 견디다 못해 흐느끼듯 토해내는 숨막히는 육체의 언어. 신음소리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한동안 가만히 누워 있었다. 여자의 신음소리 같지만 정말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미친 여자가 야밤에 남의 집 지붕에 올라가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겠는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잠이 덜 깨서 몽롱한 기분이었다. 달빛이 쏟아져 밝아진 마당의 분위기는 몽롱한 기분을 더욱 부추겼다.

지붕을 쳐다봤다.

꽉 찬 보름달 아래 우리집 지붕 위에 고양이들이 모여 있었다. 고양이들 무리 속에서 마당에서까지도 들릴만한 여자의 신음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마당에서는 지붕 위의 사정을 자세히 볼 수 없어서 장독대로 올라갔다. 얼마 전까지도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놀러오던 그 장독대로.

장독대에 서서 지붕 위의 광경을 보니 넓고 넓은 우주 공간에 붕 떠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붕 위에서는 대략 20마리 정도의 고양이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모여 있었다. 각양각색의 고양이들이었다. 짙은 줄무늬가 있는 놈, 표범처럼 둥근 점들이 있는 놈, 아예 온몸이 새까만 놈, 정반대로 온몸이 눈처럼 하얀 놈 등등 고양이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그런 고양이들이 모인 원 안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섹스를 하고 있었다.

동물의 왕국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동물들이 섹스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온다. 원숭이류 중에는 인간과 비슷한 체위를 하는 것들도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들은 항상 같은 체위를 고집한다. 암컷의 뒤를 수컷이 덮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지붕 위에서는 고양이라는 짐승이 너무나 인간적인 행위를 천역덕스럽게 벌이고 있었다. 암컷은 지붕 위에 누워 있었고, 수컷은 암컷의 몸 위에 올라타고서 열심히 허리운동을 하고 있었다. 수컷이 허리 돌리는 폼이 인간 뺨치게 능숙했다. 암컷은 수컷의 등을 끌어안고서 수컷의 움직임에 리드미컬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암컷의 입에서는 쉴새없이 인간같은 신음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 소리가 매우 자극적이어서 내 츄리닝 바지 앞이 불룩 튀어 올랐다. 고양이 암컷과 수컷의 긴 꼬리가 단단히 얽혀서 섹스의 흥분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런 둘의 섹스를 지켜보고 있는 다른 고양이들의 모습도 꼭 사람같았다. 놈들은 서로의 귓 속에 대고 소근거리는가 하면, 굉장한 음담패설이라도 들은 듯 폭소를 터뜨리며 옆에 있는 고양이의 팔을 툭 치기도 했다.

환상일까? 고양이들이 저럴 리가 없어. 꼭 사람같잖아!

나는 섹스에 한창 열중인 암컷 고양이의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장독대와 지붕 사이가 고양이의 땀구멍까지 들여다 보일 정도로 가까운 것은 아니었지만, 난 단번에 암컷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 우리집에 놀러오던 그 어미 고양이었다. 내 아내와 아들의 사랑을 받던 고양이, 내 아들의 손을 할퀴고 간 고양이, 덕분에 나의 슬럼프 공포증을 유발해 슬럼프의 신 앞으로 새끼 고양이 목숨을 바치게 만든 빌미를 제공했던 고양이. 바로 그 어미 고양이였다. 노란 털에 검은 줄이 쳐진 암컷 고양이.

내 집에서 뭐하는 짓이지? 불룩 튀어나온 츄리닝 바지 속의 물건이 단단히 염원하는 것과는 달리 나의 머리 속은 어미 고양이가 하는 짓이 못마땅하고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다.

"훠어이 훠어이, 이 놈들아! 당장 꺼지지 못해?" 나는 손을 휘휘 저어가며 고양이들한테 소리쳤다.

섹스쇼 구경에 열중하던 고양이들의 시선이 장독대 위의 나에게로 모아졌다. 섹스쇼의 두 주인공들도 하던 짓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고양이들이 거의 동시에 나를 향해 짧은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섹스쇼는 계속 진행됐고, 구경꾼 고양이들도 쇼 관람에 열중했다. 저 놈들이 나한테 야유를 보냈어, 나를 무시했어.

고양이들은 나를 외면했지만, 어미 고양이만은 달랐다.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극적인 신음소리를 쉴새없이 내뱉으면서. 어미는 웃고 있었다. 어미의 눈웃음은 나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이리로, 지붕으로 올라와, 나랑 같이 놀자.

물론 나는 지붕으로 올라 갈 수 없었다. 담장과 지붕 사이의 거리는 오밤중에 건너기에 만만치 않았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조차 터무니없는 일이다. 내가 정말로 저 어미 고양이랑 섹스를 하고 싶은 기분이라도 들었다는 것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렇치만 내 츄리닝 바지 앞이 솟아오른 이유를 누군가가 묻는다면...

갑자기 어미 고양이의 시선이 나에게서 멀어졌다.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불규칙한 빠른 울음소리를 냈다. 부둥켜 안고 있던 수컷의 허리 움직임이 순식간에 격렬해 지는 순간이었다. 두 마리의 고양이가 미친 듯이 흔들리며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댔다. 장난하듯 지켜보던 구경꾼들도 진지한 자세로 변했다.

마침내 섹스는 끝났다. 더 이상 신음소리도 없었다. 수컷은 죽은 듯이 어미 고양이의 몸 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어미 고양이가 기분좋은 웃음을 흘리며 또다시 나를 쳐다봤다. 이리로, 지붕으로 올라와, 나랑 같이 놀자, 이젠 네 차례야.

나의 츄리닝 바지는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섹스를 끝낸 수컷이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수컷이 구경꾼들 옆으로 걸어갔다. 구경꾼 고양이들은 수컷한테 소리를 지르고 툭툭 건드리고 난리가 났다. 수컷의 축 늘어진 성기가 드러났다. 그것은 사람의 성기랑 크기나 모양이 똑같았다. 어떻게 사람보다 훨씬 작은 고양이가 그런 물건을 가질 수 있었을까?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아닐 것이다.

나는 이미 이사오던 날에 어미 고양이의 성기를 직접 목격하지 않았던가. 사람의 그것을 꼭 빼닮은 것을.

이번에도 내 눈은 자연스레 어미 고양이의 성기로 향했다. 수컷이 떠나버려 누워 있는 어미가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는 모습이 정면으로 보였다. 내 츄리닝 바지는 텐트 수준을 넘어 에펠탑 수준으로까지 불끈 솟았다. 어미의 성기는 예전보다 더 자극적인 모습으로 나를 흥분시켰다. 잔뜩 클로즈업된 포르노 영화의 성기 확대장면을 보는 기분. 어미의 성기는 수컷이 흘리고 간 하얀 액체로 범벅이 되어 번들거리고 있었고, 섹스의 흥분으로 한껏 부어 올라 있었다. 숨을 쉬려는 것인지 아니면 입맛을 다시는 것인지 성기는 힘겹게 꿈틀거렸다.

어미가 누운 채로 구경꾼 고양이들을 둘러봤다. 구경꾼들이 얌전하게 어미를 주시하고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인 어미가 무리 중 한 고양이를 앞발로 가리켰다. 다른 고양이들의 입에서 실망의 한숨소리가 나왔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운의 수컷이 태연하게 어슬렁거리며 어미한테 접근했다. 수컷이 어미의 정면에 와서 서자, 어미가 수컷의 아랫도리로 앞발을 갖다댔다. 살살 문지르며 애무하는 것이다. 수컷의 사람같은 물건이 부풀어 올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것보다 컸다. 나도 사우나같은 데서 지지않는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그 놈의 물건은 그 이상이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직접 내 눈으로 보았으니 확실한 것이었다. 구태여 내 몸을 꼬집어 보지 않아도 꿈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수컷이 한껏 발기된 성기를 어미한테 밀어 넣었다.

아! 아앗!

나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전율을 느꼈다. 삽입 순간에 어미 고양이가 내뱉은 짧은 신음소리는 정말 사람의 목소리였다.

아니야, 사람의 목소리가 아냐. 요물의 목소리야. 저 년은 요물이야. 인간을 홀리는 요물귀신이야.

수컷의 허리운동이 시작되고 어미는 자극적인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어미는 섹스의 쾌락을 쫓느라 이제 나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장독대에서 내려왔다.

지붕 위에서 벌어지는 고양이 섹스쇼는 내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마땅히 고양이들을 쫓을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고, 생각이 나더라도 실행에 옮길 힘도 없었다. 잠에서 덜 깬 몽롱한 기운에 멍하기만 했다.

안방으로 들어와 다시 이불을 덮고 누웠다. 아내는 내가 방을 나설 때와 똑같이 등을 돌린 채 열심히 잠자고 있었다.

나는 천장을 향해 누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신경쓰이게도 어미 고양이의 신음소리가 쉴새없이 또렷이 들렸다. 수컷 고양이는 별 소리를 안내는데, 왜 유난히 어미는 시끄러운 걸까?

너 들으라고 일부러 그러는거야.

마음 속이 심란해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을 떴다. 어두운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우주같이 넓게만 보이는 어두운 천장이 내 머리 속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천장이 투명하게 사라졌다. 보름달과 별무리들이 어우러진 밤하늘이 펼쳐졌다. 내 바로 앞에 고양이들이 둥글게 원을 이루며 모여 있었다. 밑에서 쳐다보는 시점이라 고양이들의 엉덩이, 발, 꼬리같은 것만 보였다. 고양이들 가운데에 수컷에게 엉켜붙은 어미의 뒷모습이 있었다. 어미의 엉덩이가 벌어져 있었다. 수컷이 힘껏 허리를 내지를 때마다 어미의 몸뚱아리가 세차게 흔들렸다. 단단히 엉겨붙은 고양이들의 꼬리는 뻗치는 쾌감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 꿈틀거렸다. 나의 상상력은 그런 세세한 모습까지도 다 볼 수 있었다.

내 성기는 무너질 줄 모르고 계속 츄리닝 바지 속에서 힘을 주고 있었다. 나는 변태인 것이 확실했다. 인간이 고양이들의 교미에 흥분해서 잠을 못 이루다니.

아랫도리에서 뻗치는 기운에 압도되어 더 이상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아내 쪽으로 돌아누웠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아내의 뒷모습이 실루엣으로 보였다. 이불을 들추고 아내 쪽으로 바짝 붙었다.

아내의 가슴을 만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내의 유방. 나의 보물 1호. 아내의 얇은 런닝을 통해 부드럽고 탄력있는 유방의 감촉이 전해졌다. 확 달아오른 기운에 나는 아내의 등에 내 몸을 붙였다. 나의 성난 아랫도리가 아내의 엉덩이에 닿아 헐떡거렸다.

"으음, 왜 그래? 잠 안 자?" 아내가 내 손길에 잠을 깼다. "이거 무슨 소리야?" 아내도 고양이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고양이들이 우리 집에 소풍 왔어."

"뭐?"

나는 잠이 덜 깬 아내를 엎드리게 만들었다. 아내의 잠옷 바지를 벗겼다. 그 속의 하얀 팬티도 벗겼다. 그리고는 아내의 살찐 엉덩이를 끌어 안았다. 미칠 것 같았다. 나는 아내의 엉덩이를 덮쳤다.

천장에서는 계속해서 어미 고양이의 음탕한 신음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우리집 천장에서는 고양이들이 너무나 인간적인 섹스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나는 아내와 함께 너무나 짐승같은 섹스를 벌였다. 그 순간 나는 짐승이 되었다.

[4]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