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한 [2] by 조재형

읽을꺼리 2007. 5. 8. 23:45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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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양이는 아내와 동우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나만 봤다하면 아내와 동우는 고양이 자랑하느라 바빴다. 나는 마치 고양이 서커스단의 단장이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매일매일 조련사들-아내와 동우-이 단장인 나에게 찾아와 시시콜콜한 훈련성과를 보고하는 듯한 기분. 단장님 오늘은 고양이들이 훌라후프를 30분이나 돌렸습니다 단장님 오늘은 고양이들이 거리로 나가 시민들한테 서커스표를 팔았습니다 단장님 오늘은 고양이들이 쓰레기 분리수거를 했습니다. 물론 아내와 동우가 내게 해 준 얘기들은 좀 더 그럴 듯한 현실적인 얘기들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

동우: "아빠! 나 고양이 만졌어. 고양이들이 이젠 내 옆에도 막 오고 내가 등을 쓰다듬어도 가만있어!"

아내: "자기야! 이젠 고양이들이 여기가 자기 집처럼 편안한가봐. 장독대로 쓰는 저기 작은 창고 있지? 가끔씩 그 속에서 고양이들이 자고 가나봐. 낮에 창고에서 나오는 걸 여러번 봤어."

식구들의 말에 나는 나름대로 대꾸를 해주지만, 식구들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동우에게: "그러지마, 동우야. 함부로 만지다 고양이가 우왕! 하고 문다, 물어. 그럼 얼마나 아픈데. 잘못하면 아주아주 나픈 병에 걸릴 수도 있어. 개한테 물리면 광견병, 고양이한테 물리면 광...고양이병."

아내에게: "뭐야? 그럼 혹시 우리 이사오기 전부터 원래 이 집 창고에서 숨어 살던 고양이들인가? 우리가 새로 이사와서 경계를 하다가 이제는 안심이 돼서 창고에서 다시 살겠다 이건가? 쫓아내는 게 좋겠어. 창고 속에다가 고양이들이 똥싸고 오줌싸고 냄새가 이만저만이 아닐 꺼야. 병균이 우글거릴 거야."

그러나 식구들은 내 의견과는 반대로 고양이들과 너무도 친하게 지냈다. 고양이들도 우리 식구들의 우호적인 태도를 눈치챘는지, 이제는 마루에까지 올라와서 낮잠을 잘 정도로 경계심이 누그러졌다.

그 속에서도 나에 대한 경계심은 남아 있었다. 내가 나타난다고 무조건 도망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2m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내가 그 안으로 접근하기만 하면 슬그머니 달아나 버렸다. 나는 그저 다른 식구들과는 달리 내가 먹을 것을 아무 것도 던져주지 않으니까 고양이들이 싫어하는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뭐 그리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내가 이 시골 구석까지 내려온 것은 고양이 사육하려고 그런 건 아니니까. 내가 진짜 정성으로 돌보아야 할 것은 집필 중인 소설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나는 집필실에서 한창 작업 중이었고, 아내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동우 혼자 마당에 나가 있었는데, 갑자기 울부짖는 고양이 소리가 들리더니 동우가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노트북 화면 속의 소설에 푹 빠져 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 마당으로 뛰쳐 나갔다. 처음에는 부들부들 떨면서 마당에 서있는 동우의 뒷모습만 보였다. 그러다가 동우 발 밑에서 무언가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 어미 고양이와 새끼를 발견했다. 그 순간 교양이들의 눈이 내 시선과 마주쳤다. 고양이들은 땅에 떨어져 있던 빵같은 것을 덥석 물고는 장독대 위로 뛰어올라 담장 쪽으로 사라졌다. 동우의 발밑으로 빨간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동우에게 다가갔다. 동우는 맨처음의 커다랗던 비명소리와는 달리 이제는 숨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뭔가 엄청난 고통을 속으로 꾸역꾸역 참고 있는 사람처럼. 잘못 건드리면 참고 참았던 고통이 터져버려 온동네가 떠나가 버릴듯한 울부짖음이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레 동우 앞으로 걸어갔다.

오 맙소사. 동우는 오른손을 허공에 쳐든 채 말없이 떨고 있었다. 오른손이 손목에서부터 손등까지 여러 갈래로 길게 찢겨져 있었다. 고양이 발톱이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손등이 길다랗게 찢어진 상처 아래쪽은 아예 피부가 왕창 벗겨져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조금만 잘못하면 손등의 피부는 완전히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동우의 피부가 벗겨진 자리에 손 근육과 뼈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피아노 건반처럼 손등 속의 새하얀 뼈들이 쉴새없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동우만큼이나 손뼈들도 놀라서 발작하는 중이었다. 동우의 손등을 따라 쉴새없이 흐르는 피는 손가락을 따라서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내 귀에는 그 핏방울들이 마당에 떨어지며 내는 뚝!뚝!뚝!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동우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흐느끼고 있었다. 온통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었다. 가늘게 닫혀진 동우의 눈이 나를 발견했다. "어떡해... 나 어떡해? 고양이가..." 침을 흘리며 떨리는 아이의 입술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집중해서 쓰던 소설 속의 현실과 지금 마당에서 겪고 있는 진짜 현실이 뒤섞여서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주어야 할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때 뒤늦게 잠에서 깨어난 아내가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아내는 순식간에 아이의 발 밑에 흐르는 빨간 액체의 의미를 알아 차렸다. 소리를 지르며 동우 앞으로 뛰어나왔다. 손등의 상처를 보고는 완전히 흥분해서 아이의 어깨를 붙들고 거칠게 흔들어댔다. "왜 그래?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나는 아내가 아이를 자꾸 흔들면 손등 피부가 완전히 떨어져 버릴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내의 손목을 붙잡아 동우의 어깨에서 떼어냈다. 아내의 손이 처음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아내의 손목에 힘을 주자 순순히 아이의 어깨에서 풀어졌다. 내가 너무 지나치게 힘을 주었던 탓인지, 아내가 아픈 소리를 냈다. 아내가 나를 무서운 눈으로 째려보았다.

"진정해. 당신까지 흥분하면 동우는 어떡하라구. 방에 가서 소독약하고 깨끗한 천 여러장 가져와. 손등을 감싸게 깨끗한 천으로 말야." 나는 침착하게 보이려 애썼다. 그래도 목소리는 좀 떨리고 있었다. 아내는 군말없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무릎을 꿇고서 동우의 눈에 시선을 맞췄다. "동우 손에 뚜껑 열렸네. 손에 바람 들어가서 춥겠다. 하지만 걱정마. 아빠가 병원 데리고 가서 고쳐줄께. 그러기 전에 우선 손에 열린 뚜껑 닫아야겠다."

나는 활짝 벗겨져 있는 동우의 손등 피부를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살짝 잡았다. 손등 속에서 하얀 손가락 뼈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흔들거림에 자칫하면 손등 피부는 금방이라도 손등에서 떨어져 나갈 듯이 애처롭게 손등 가장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 피부를 조심조심 원래의 손등 자리에 덮어 놓았다. 손가락 뼈들이 난리치는 통에 덮어 놓은 손등 피부가 들썩거렸다.

나는 동우의 상처 난 손등을 양손으로 꼭 감싸 쥐었다. 동우의 손이 내 손 안에서 떨리고 있었다. 동우는 아무말도 못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 난 울지 말라고, 이젠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차츰 동우의 손이 안정을 되찾는 듯 했다. 아이 손의 흔들거림이 점점 잦아들더니 평온을 되찾았다.

아내가 내가 말한 물건들을 들고 나왔다.

나는 아내에게서 건네 받은 소독약 연고를 동우의 상처난 손등에 발라 주었다. 우선은 벗겨졌던 피부의 경계선에, 그 다음은 손목에서부터 내려온 길다란 세로줄들에. 손등 피부를 들추어내서 그 안에다가도 소독약을 발라주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괜히 세균에 감염될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나니 확실히 피는 별로 흐르지 않았다. 마당에 흥건히 흘러내린 핏물을 봐서는 이미 나올만한 피는 다 나와버린건지 모르겠지만. 연고 다음에는 아내가 갖고 나온 흰 수건을 동우의 손에 칭칭 감았다. 이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응급처치는 끝이었다. 잘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종합병원 응급실 레지던트 솜씨 같았다.

나는 동우를 등에 업고 마을 이장 집으로 찾아갔다. 평소에 별로 왕래도 없었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읍내 병원으로 가기 위해 마을 앞으로 하루에 5번만 찾아오는 시골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었다. 이장 승용차를 얻어타고 우리 부부는 동우와 읍내 병원에 가서 정식으로 치료를 했다. 의사는 우려할 만한 정도의 상처는 아니라며 안심시켜 주었다. 병원에 올때까지 내내 안절부절 못하던 아내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을 했다.

치료받고 손에 붕대를 감은 동우를 데리고 우리 부부는 또다시 이장의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차에서부터 잠이 든 동우를 안방에 눕혔다. 아내와 나는 말없이 아이를 바라 보았다.

한동안 눈물만 흘리던 아내가 갑자기 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게 왜 이런 촌구석에 살자고 그랬어? 꼭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야 소설 쓰는거야? 봐! 이렇게 동우가 다치고 그러잖아! 우리 아들 좀 봐!"

"지선아, 진정해. 애 다친 거 갖고 왜 여기 이사온 거까지 들먹거리구 그래? 고양이 위험하다고 내가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먹을 거 줘가면서 집안으로 끌어들인 건 너잖아." 평소같았으면 난 아내와 대판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지금의 나는 평소의 상태가 아니었다. 내 머리 속은 심각한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 "진정해. 손등에 상처난 것 뿐이야. 그딴 걸로 생명에 지장생기는 거 아니잖아."

"아무리 그래도 넌 아들이 다쳤는데 아무렇지도 않니? 아까부터 계속 왜 그렇게 무덤덤하니? 나 혼자 호들갑 떠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지 좀 마. 기분 나뻐."

"내 눈? 내가?"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더 이상 아내와 말장난하고 싶지 않았다.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가?"

"이젠 너도 고양이들이 싫어졌지? 난 훨씬 옛날부터 맘에 안들었어. 그 새끼들 다 죽여버릴꺼야."

마당으로 나왔다. 동우가 흘린 핏자국이 검게 변색된 채 말라있었다. 그걸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천장을 장독대로 사용하고 있는 작은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는 문도 없이 출입구가 뻥 뚫려 있는 구조였다.

창고 속에서 퀴퀴한 냄새가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창고 특유의 냄새인지, 고양이들이 남기고 간 냄새인지 구분이 안갔다. 이사오던 날 호기심에 한번 들어와 보고난 뒤로는 처음으로 들어와 보는 창고였다.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창고 안에는 전에 살던 집주인이 들여놓은 온갖 잡동사니들이 멋대로 쌓여 있었다. 녹 슨 농기구들, 기계부품들, 썩은 목재들, 플라스틱 물통들... 쓰레기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물건들이 잔뜩 있었다.

아내는 창고 안에서 고양이들이 잠을 자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 말을 떠올리며 창고 속을 둘러 보았다. 썩은 목재들이 세워져 있는 사이로 종이박스가 하나 있었다. 위가 트인 종이박스 속에는 낡은 옷들이 깔려 있었다. 고양이들이 종이박스 속에서 옷가지들을 이불 삼아 잠자는 것 같았다. 어쨌든 지금은 고양이들이 없었다. 있었더라면 당장 내 손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그냥 나오려다 창고 입구에 세워져 있는 쇠파이프들을 발견했다. 그 중 골라 손에 들었다. 어른 팔뚝만해서 묵직한 게 손에 잡고 휘두르기에는 딱 안성맞춤이었다. 휘둘러서 뭔가를 두들겨 패기에는 더욱 안성맞춤이었다. 파이프 몸체에는 여기저기 하얗고 노란 이끼같은 것들이 들러 붙어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고 덥석 잡고서 마당으로 나왔다.

그 다음에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장고 속을 뒤져 고등어 두 마리를 찾아냈다. 그 와중에 하얀 냉장고 여기저기에 쇠파이프를 잡았던 손에서 옮겨온 얼룩이 묻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고등어 두 마리를 부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당 한쪽 구석에 놓아두었다. 그러고 돌아서려니 좀 찝찝했다. 마당에 고등어 두 마리만 덜렁 놓여져 있으면 고양이들이 의심할지도 몰랐다. 다시 부엌에 들어가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왔다. 쇠파이프로 고등어를 두드려 팼다. 고등어가 너무도 간단하게 박살났다. 대가리고 몸통이고 할 것 없이 산산조각났다. 그 부서진 고등어를 쓰레기 봉투 안에 주워 담고, 봉투 끝을 묶어 놓았다. 그리고는 아내가 쓰레기 봉투를 밖에 내다놓기 전에 임시로 놓아두는 부엌 옆의 수돗가에 놔두었다. 미끼가 완성된 것이다.

부엌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문턱이 높았다. 다리를 들어올려 문턱을 지나면 바로 아래에 있는 굵직한 돌계단 2개를 밝고 내려가야 했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던졌다. 고양이에게 접근할 때 구두소리를 내면 곤란할테니까. 나는 양말만 신은 채로 문턱 밑의 돌계단에 완전히 엎드렸다. 높은 문턱을 방패 삼아 내 모습이 은폐될 것이다. 고개를 살짝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여기서는 고양이들이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장독대도, 고등어 미끼가 있는 수돗가도 다 잘 보였다. 녹 슨 쇠파이프를 힘껏 쥐어 보았다.

고양이 새끼들, 나타나기만 하면 다 죽여버릴테다.

그 후 몇시간을 계단에 엎드린 채 하염없이 고양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아내가 부엌에 들어와서 저녁상을 차렸다. 아내가 여기서 뭐하는 있는 거고, 냉장고 안에 둔 고등어는 어디 갔으며, 시커멓게 묻은 얼룩은 뭐냐고 물었다.

"고양이들한테 우리 가족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겠어. 물론 그 놈들이 후회할 때는 이미 저 세상에 간 뒤겠지만."

아내는 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동우랑 같이 저녁 먹자고 말했지만, 나는 아무말도 않고 그저 엎드려 있었다. 일일이 대꾸하기도 귀찮았다.

잠시 후 저녁을 다 먹은 아내는 상을 부엌에 갖다 놓고 나가면서, 밤새 이러고 있을 거냐고 물었다. 내가 아무런 대꾸를 안 하자 그냥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밤 10시가 되었을 때, 아내가 다시 나와서 잠 안 잘 거냐고 물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무 대답이 없자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오랜 시간을 부엌 계단 위에서 망을 보면서 나는 오늘 낮에 고양이한테 상처입은 동우를 보았을 때부터 느꼈던 기분의 정체를 음미해 볼 수 있었다.

소설가가 느끼는 무거운 기분의 정체.

그건 바로 슬럼프가 찾아왔다는 신호였다.

나는 여기 시골로 이사오기 전까지 오랜 기간동안 슬럼프에 시달려 왔었기 때문에 슬럼프가 찾아오는 기분을 잘 알고 있다. 슬럼프가 '나 왔수다'하고 말하고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컨대션인 때와 슬럼프 때와는 확실히 머리에서 느끼는 기분상태가 틀리다.

지금 내 머리 속은 오늘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때 느끼던 상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꽉 들어 찬 느낌, 머리 속이 빈틈없이 콘크리트로 채워진 느낌이다. 아무리 글을 쓰려고 해도 벽이 가로막는 듯한 막막한 두려움에 시달리게 하는 느낌.

슬럼프가 확실했다. 나는 이제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고양이였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처음부터 고양이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미 고양이가 화근이었다. 이사오던 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기 거시기를 애무하고, 내가 아내 가슴 주물럭거리는 것을 장독대 위에서 지켜보고, 동우의 손을 긁어놓고, 덕분에 이제까지 한번도 거른적이 없던 오후 집필시간을 오늘 공치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우리 집에 얼씬도 못하게 했어야 했는데.

고양이는 요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미묘한 감정상태를 연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어떤 계기로 인해 도중에 끊어지게 되면 슬럼프가 되는 것이고, 그걸 원래대로 복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때로는 몇 십초만에 정상을 되찾기도 하지만, 때로는 평생을 슬럼프에 시달리다 작가를 포기하게 되는 수도 있다. 언제쯤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는 고대로부터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괴롭히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삼아온 슬럼프의 신만이 알고 있으리라.

소설가로서의 마지막 돌파구로 여기 시골까지 이사왔는데, 또다시 슬럼프에 빠지면 이번엔 또 어떻게 헤어나올 수 있을까? 불안했다. 이렇게 작가생활이 쓸쓸히 끝날 수도 있었다. 글쓰는 일을 포기하고 나면 무얼하면서 먹고 살 수 있지? 난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어떡하든 이제 막 찾아온 슬럼프를 벗어나야만 했다. 어제까지도 순조롭게 집필하던 소설이 아까워서라도 무슨 방법이든 짜내야 했다. 글쓰기 공포증에 시달리기 시작한 내 머리 속을 확 뚫어줄 수 있는 방법을.

그렇다. 고양이다.

고양이로 생긴 문제는 고양이로 풀어야 했다. 단순히 혼내주는 것만으로는 불안하다. 동물들이란 아이큐가 심각하게 낮은 존재라서 혼쭐이 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다시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성가신 고양이로 인해 나의 미묘한 감정상태는 다시 흔들려 버리고 슬럼프는 계속 나와 함께 붙어다닐 것이다.

확실하게 죽여 버려야지. 가능하다면...

고대인들이 풍년을 기원하며 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쳤듯이, 나도 순조로운 창작활동을 기원하며 고양이를 슬럼프의 신에게 제물로 바칠 것이다. 예전의 슬럼프를 가족들의 행복한 서울생활을 제물로 바쳐 벗어났듯이, 이번 슬럼프의 제물은 고양이였다.

물론 동우를 해꼬지한 복수도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고양이들이 쉽게 내 손에 걸려들까? 그 재빠른 놈들이.

마음 속에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머리 속의 슬럼프 장벽이 더욱더 두꺼워지고 무거워졌다. 어쨌든 시도는 해야만 한다.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한번 혼쭐이 나면 다시는 우리집에 안 찾아 올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나니 시간은 새벽 2시를 넘고 있었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에다 아내와 동우가 잠든 방에는 불이 꺼져 있었지만, 마루에 환하게 불을 켜놓고 있었고 집 앞에 세워진 가로등 불빛도 함께 어우러져 마당 전체는 물론 장독대까지도 훤히 볼 수 있었다.

초저녁부터 쭉 엎드린 자세로 있었지만, 난 전혀 피곤하지도 졸리지도 않았다. 슬럼프에 대한 두려움이 나의 모든 신경을 흥분상태로 만들었다. 오직 고양이들을 기다리는 일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고양이 두 마리가 장독대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나쁜 새끼들, 역시 모습을 나타냈군. 먹이를 주면서 잘 대해주던 아이를 상처 입히고는 뻔뻔스럽게 또 나타났군. 그러니 아이큐 낮은 짐승이지.

나는 혹시나 고양이들 눈에 띌까봐 문턱 밑으로 더욱 몸을 수그렸다.

고양이들이 창고 옆에 난 계단을 통해 장독대에서 마당으로 느릿느릿 내려왔다. 놈들은 잠시 불꺼진 방을 기웃거리더니 수돗가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정확히 나의 미끼에 걸려들었다. 쓰레기 비닐을 발톱으로 뜯고서 속 안의 내용물을 다 끄집어 내고 있었다. 물론 그 속에는 내가 정성껏 먹기 좋게 다듬어 놓은 고등어 두 마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쇠파이프를 손에 들고 부엌에서 살금살금 걸어 나왔다. 구두를 벗어 던진 양말차림이어서 걷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서두르지 말자고 다짐하며 아주 조금씩 수돗가의 고양이들에게 다가섰다.

내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고양이들은 고등어를 먹느라 정신없었다. 놈들이 쩝쩝거리며 입을 놀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냐, 이놈들아, 마지막 만찬이니 맛있게 먹어라.

나와 고양이와의 거리가 많이 좁혀졌다. 하지만 아직 쇠파이프의 사정권은 아니었다. 난 딱 두 발자국만 더 걸어가서 액션을 취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어미 고양이의 대가리를 쇠파이프로 후려칠 것이다.

그 때 느닷없이 새끼 고양이가 고등어를 먹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녀석의 시선이 나의 시선과 정통으로 부딪혔다. 새끼 고양이가 나를 보더니 무표정하게 짧은 울음소리를 냈다. 냐아아아옹∼.

예정에 없던 돌발상황에 난 당황했다. 바보같이 서투르게 어색한 동작으로 어미의 머리를 향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쇠파이프는 벌써 몸을 피해 달아나는 어미 고양이의 머리를 빗나가서 땅에서 길게 솟아오른 수도 파이프를 때렸다. 깡! 하는 타격소리가 고요한 새벽에 울려 퍼졌다.

나는 휘청거리며 몇번 더 쇠파이프를 휘둘렀지만 붕붕 허공 가르는 소리만 났을 뿐, 도망치는 고양이들에게 닿지도 않았다.

고양이들이 쏜살같이 마당을 가로질러 창고 옆 계단을 향해 도망치고 있었다. 집 대문이 닫혀 있고 담장도 높아서 고양이들이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길은 장독대로 올라가는 방법 뿐이었다.

고양이들이 계단을 향해 훌쩍 뛰어 올랐다.

나는 급한 마음에 수돗가 물받이 통에 있는 플라스틱 바가지를 고양이들한테 집어 던지며 쫓아갔다. 한심하게도 바가지는 고양이들 위에 있는 계단을 맞고 튕겨 나가고 말았다.

어미 고양이는 가뿐하게 계단을 달려 장독대로 올라갔다. 나의 사정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린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바로 윗계단을 때리고 떨어지는 바가지에 놀랐는지, 새끼 고양이가 계단에서 발을 헛딛어 마당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렇더라도 떨어진 즉시 다시 계단으로 뛰어올랐다면 동작이 굼뜬 나를 따돌리고 무사히 장독대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새끼 고양이는 마당에 떨어져서 당황한건지 아니면 나이가 어려서 상황판단이 잘 안되는 건지, 다시 계단으로 갈 생각은 못하고 마당을 미친 듯이 헤매고 다녔다.

장독대 위에서 어미가 새끼를 향해 목이 찢어질 것처럼 거칠게 소리질렀다.

나는 우연히 찾아온 행운을 놓치지 않으려 일단 장독대 계단을 막아섰다. 그리고 새끼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고 그 즉시 마당 한쪽 구석으로 몰았다. 몸을 지그재그로 이리저리 흔들며 구석으로 유인했다. 허둥대며 날뛰던 새끼는 내 몸을 피한답시고 뛰어다녔지만 내 의도대로 나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는 가운데 마당 한구석에 몰리고 말았다.

한 발자국 정도의 거리까지 좁혀졌다. 나는 쇠파이프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새끼는 구석에서 튀어나와 필사적으로 내 오른쪽으로 도망쳤다. 고양이가 지나가면서 구두없이 양말만 신고 있는 내 발을 스쳤다. 그 간지러운 털의 느낌은 기분 나쁘게 소름끼쳤다. 그와 동시에 어떤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느낌이기도 했다. 나는 몸을 틀며 정확히 내 발 밑을 내달리는 새끼 고양이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퍽. 쇠파이프가 정확하게 고양이 머리에 맞았다. 단 한방에 새끼 머리가 박살났다. 발 밑을 스치는 고양이 털이 전해준 민감한 확신이 인도하는 대로 휘두른 단 한방에.

조그만 고양이 머리는 산산이 부서져서 목에서 떨어져 나갔다. 머리는 이제 큼직한 몇가지 파편들로 쪼개져 있었다. 머리가 없어졌는데도, 몸통이 꿈틀거리며 요동쳤다. 목에서는 핏줄기가 죽죽 뿜어져 나왔다. 잠시 후 머리 없는 몸통은 움직임을 멈췄고, 목에서 나오던 피의 양도 점점 줄어 들었다.

등 뒤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뒤돌아 보았다.

장독대로 도망갔던 어미 고양이가 어느새 마당에 내려와 있었다. 어미가 나를 노려봤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대신 어미의 무표정한 얼굴이 나에게 묻고 있었다.

이게 뭐야? 내가 이 정도 대접을 받을 정도로 니네 가족한테 죽을 죄를 진 거니? 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한 거야?

난 정말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했지? 내가 정말 바라던 게 이런 거였을까?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다. 조금 전까지 글쓰기 인생에 슬럼프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이 놈의 시골생활에서도, 아니 내가 죽는 날까지 아무런 소설도 나오지 못할 거라고 두려워했다. 실제로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려고 시도해 보지도 않고서 성급하게 고양이와 슬럼프를 연관시켰다. 슬럼프에 관해서는 내가 전문가라는 생각에 빠져서.

어쩌면 시골에서 글을 쓰는 동안 알게 모르게 소설이 성공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쌓였는지도 몰랐다. 그 스트레스를 동우가 다치는 사고를 빌미삼아 고양이들한테 풀려고 했던 건지도 몰랐다. 확실치는 않다. 그랬던 건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조금 전까지는 확실히 고양이들을 죽이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확실히 슬럼프 걱정없이 완벽하게 멋진 소설을 일사천리로 완성시킬 수 있다는 환상에 젖었었다. 슬럼프의 신이 고양이의 목숨을 먹고 내 창작능력을 도로 토해낼 것이라는 환상.

환상은 사라지고 죽은 고양이만이 남았다. 슬럼프의 신이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힘이 풀린 난 쇠파이프를 마당에 떨어뜨렸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에게 다가갔다. 어미는 이제 나같은 건 신경쓰지도 않았다. 내 옆을 무심히 지나서 이제는 아무 움직임도 없는 새끼의 몸통으로 다가갔다. 흩어진 새끼 머리 파편들을 묵묵히 훑어보고 나서, 어미는 새끼 몸통을 덥석 물었다. 몸통을 입에 물고는 그대로 마당을 지나 창고 계단을 올라 장독대까지 올라갔다.

어미가 새기를 입에 문 채 아주 잠깐동안 나를 바라봤다. 세로로 찢어진 검은 눈동자가 나에게 원한의 메시지를 남겼다.

꼭 갚아주겠어.

어미는 장독대 담장을 타고 넘어 우리집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고양이가 사라진 뒤에도 우두커니 장독대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이제까지 내가 벌인 일들이 꿈만 같아서 쉽사리 헤어날 수 없었다.

조금 전에 마당에서 벌어졌던 고양이와의 추격전은 끝나고 다시 조용한 새벽이었다. 아내는 잠이 깊이 들었는지 나와 보지도 않았다. 우두커니 나혼자 마당에 서서 대책없이 멍하니 있기만 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바닥을 내려다봤다. 어미가 새끼를 물고 가면서 새끼의 목에서 새나온 핏자국이 마당에서 장독대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쇠파이프로 새끼 머리를 부숴 버렸던 자리에는 큼직하게 시뻘건 피터지는 자국이 남았다. 내 발 밑 여기저기에 새끼 머리 파편들이 어질러져 있었다.

나는 그 파편들을 빠짐없이 주웠다. 머리통, 뇌수, 눈알, 아래턱 등이 조각조각 모아졌다. 모두다 피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파편들 전부를 힘껏 담장 밖으로 던져 버렸다. 밖은 산이니까 들짐승이나 새들, 아니면 땅 속의 미생물같은 것들이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쇠파이프도 가만 놔두고 싶지 않았다. 역시 담장 밖으로 던져 버렸다. 마당에는 고양이들이 쓰레기 봉투에서 파헤친 고등어를 비롯한 음식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다. 일일이 손으로 집어서 봉투에 담고 묶었다.

이제는 내 자신을 돌아볼 차례였다.

입고 있는 셔츠며, 바지며, 양말까지도 말이 아니었다. 녹슬고 이끼낀 쇠파이프에서 묻은 이상한 얼룩에, 고등어 비린내를 비롯한 음식 썩는 냄새에, 고양이한테서 묻은 시뻘겋다 못해 까맣게 보이는 피에 젖어 있었다. 전부다 벗어버리고 벌거숭이가 되었다. 부엌에 들어가 커다란 쓰레기 봉투를 가져와 옷가지들을 전부다 담았다. 그리고는 방금 전에 수습한 음식쓰레기 봉투와 함께 대문 밖에 있는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 며칠 후면 쓰레기차가 와서 처리해 줄 것이다.

그 다음엔 뒤집힌 채 마당에서 뒹굴고 있는 -고양이들한테 집어던지는 용도로 사용했던- 바가지를 집어서 수돗가로 왔다. 바가지 한가득 물을 담아 몸에 끼얹으며 목욕을 했다. 몸은 시원했지만, 머리를 짖누르는 무거운 기분 -슬럼프!- 은 사라지지 않았다.

목욕을 끝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후 방에 들어갔다. 평소 때는 동우는 자기 방에서 잤지만, 오늘만큼은 엄마랑 안방에서 같이 자고 있었다. 나는 옷장에서 속옷과 츄리닝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이불 위에 누웠다. 곧바로 잠이 들었다.

4.

다음날 오후 늦게 서야 일어났다. 머리 속이 숨막히게 답답했다.

슬럼프!

어제 저녁을 굶어서인지 뱃속이 밥 달라고 난리였다. 나는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아내가 차려준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밥상머리에 앉은 아내는 별로 말이 없었다. 마당의 고양이 핏자국이랑 대문 밖의 쓰레기 봉투들을 보았다면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챘을 텐데.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건지도 몰랐다. 어제 새벽에도 안방 문을 가만히 열고서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을 속속들이 다 지켜보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상관 않기로 했다. 아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은 한 구태여 밝히고 싶지 않았다.

꾸역꾸역 밥을 다 먹고 나서, 마당으로 나갔다.

동우녀석이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며 놀고 있었다.

마당에는 핏자국이 많이 희미해져 있었다. 동우가 흘렸던 것도, 새끼 고양이가 흘렸던 것도 전부 다 말이다. 아내가 물청소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동우에게 갔다. 오른손은 붕대를 하고 있어서 왼손으로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며 놀고 있었다. 놀고 있는 폼이 이제는 별로 아프지 않은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나를 보자 동우가 웃었다. "아빠, 잠꾸러기. 지금 일어나면 어떡해. 소설 언제 써?"

소설얘기에 무겁운 머리가 더 신경 쓰였다. 하지만 애써 동우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화제를 딴데로 돌려야지. "이제 손 안 아퍼?"

"움직이려고 하면 쪼끔 아프고 간지럽고 그래. 근데 많이 안 아퍼. 엄마가 며칠 있으면 다 낫는대."

"그것 참 다행이다."

"근데 오늘은 고양이들 안 왔어. 꼭 만나서 사과해야 되는데."

가슴이 놀라서 움찔했다.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들이 머리 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쇠파이프, 새끼의 박살난 머리, 어미의 눈빛. 원한을 품은 눈빛.

꼭 갚아주겠어!

동우랑 고양이 얘기하기 싫었다. 아니 어느 누구와도 다시는 고양이 얘기하기 싫었다. "아빠는 이제 글쓰러..."

동우가 성한 왼쪽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자기 말을 아빠가 꼭 들어줘야 한다는 듯이. 비겁하게 피하면 안된다는 듯이.

"어저께 엄마가 호떡 먹으라고 후라이팬에 구워 줘서 마당에서 먹었어. 엄마가 2개 줬는데 하나 먼저 먹고 남은 것도 또 먹을려고 그러는데 고양이가 왔었거든. 엄마 고양이랑 새끼 고양이랑. 자기들도 호떡 달라고 막 내 바지 잡고 그래서 나도 화가 나고 그러니까 고양이들 골탕 먹으라고 장난쳤어." 동우는 입 안이 마른 듯 침을 꿀꺽 삼켰다. "음, 그래서 '이거 먹어'하면서 호떡을 고양이들한테 주는 척하다가 고양이들이 잡을라고 그러면 '뻥이야'하고 약올리면서 호떡을 고양이들이 못잡을만치 높게 들었어.

그래도 고양이들이 자꾸 달라고 그래서 내가 계속 그렇게 장난쳤어. 한 열번정도. 그랬드니 화났나봐. 엄마 고양이가 이렇게..." 동우가 붕대를 칭칭 동여맨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어저께는 막 아프고 그래서 고양이가 막 밉고 그랬는데, 오늘 생각해 보니까 내가 잘못했어. 아빠, 그치? 내가 잘못했지?"

"글쎄. 고양이들이 먼저 우리 동우한테 귀찮게 매달리고 그랬으니..." 동우가 내가 새벽에 한 짓을 알면 뭐라고 할까? 나보고 고양이를 찾아가 사과하라고 그럴까?

"엄마한테도 말해봤는데, 내가 잘못했대. 그래서 아까부터 마당에 나와서 고양이들 기다렸어. 근데 아직도 안 와."

고양이들은 오지 않을 꺼야. 아빠한테 험한 꼴을 당했거든.

"동우한테 아프게 해서 고양이들도 미안하니까 안 오는 건지도 몰라. 조금만 더 기다려 보다가 안 오면 방에 들어가서 놀아. 아빠는 글쓰러 들어갈께."

내 손목을 잡고 있는 동우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내고 집필실로 도망쳤다.

정말이지 고양이 얘기는 이제 입에 담고 싶지 않았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