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소설 장르의 단행본과 잡지를 펴내는 Cemetery Dance 출판사 홈페이지에 Jason Sechrest가 쓴 칼럼을 번역했습니다.

내가 스티븐 킹에게 쓴 편지, 그리고 나의 인생을 변화시킨 답장

10살 때 내가 생전 처음 쓴 글을 스티븐 킹에게 보냈다.

그것은 "워싱턴 스트리트의 살인"이라는 단편소설이었다.

그 때 내가 받은 답장이 나의 인생 행로를 영원히 변하게 했다.

인디애나 주 콜럼버스에 있는 스미스 초등학교에 루저 클럽이란 것이 있었다면, 내가 틀림없이 루저 클럽의 멤버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990년 가을에 나는 "그것"에(처음엔 미니시리즈로, 그 다음엔 장편소설로) 자연스럽게 끌렸던 것이리라.

모든 일의 시작은 1990년 11월 18일 저녁이었고, 거실에 있던 나는 그 당시엔 대형화면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그저 아담한 크기의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 날 저녁 그 곳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어땠을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데리 마을에 있는 위챔 스트리트의 빗물 배수관에서 불쑥 나타난 그 괴물체를 보고 앉은 채로 겁에 질린 나의 입이 떠억 벌어지고 동공이 팽창했을 거라는데 기꺼이 돈을 걸겠다. 그것은 토요일 아침마다 TV 쇼에서 보았던 유쾌한 삐에로 캐릭터 '보조(Bozo)'와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전혀 '보조'스럽지 않은 삐에로였다. 노란 비옷을 입은 소년이 갑자기 비명을 지른 것은 그 삐에로가 입술을 잔뜩 벌려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때였다. 그리고 신문지로 만든 종이배를 되찾으려고 소년이 배수구 속으로 손을 뻗는 순간 코가 커다랗고 빨간 그 삐에로가 아이의 팔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끌어당겼다.

그것이 내가 스티븐 킹을 알게 된 계기였다.

그 이전에는 텔레비전의 황금시간대에 "그것"에 나온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살아움직이는 사진, 피를 토해내는 화장실 세면대, 어린이를 잡아먹는 삐에로 같은 것들. 그 때는 1990년이었고, 방송국마다 표현의 한계를 넘나들면서 어디까지 표현해도 괜찮을지 시험해보고 있었고, 나같은 어린애들이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 시간대였다.

"그것"은 다음날 학교에서 모든 아이들의 화제가 되었고, 그 사실은 나의 기억이 또렷하다.

그 주말에 나는 냉큼 달려가서 장편소설 문고본을 사는데 용돈을 썼다. 미니시리즈 "그것"에서 삐에로를 연기한 팀 커리의 무서운 얼굴이 표지에 나온 책이었다. 그 책을 잡고만 있어도 소름이 돋았다.


어릴 때부터 독서에 열심이었지만, 1138페이지라니, 그것은 단연코 내가 독서에 도전했던 가장 긴 분량의 책이었다. 나는 이미 공포장르의 팬이어서,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에드가 앨런 포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사랑하던 상태였다. 그런데 스티븐 킹은 전혀 다른 종류의 야수였다. 킹의 공포는 사실상 사람사는 마을의 모습에 관심을 더 보였다. 그로 인하여 우리 이웃으로, 우리 학교로, 심지어 우리집 안으로 무서움을 곧장 끌어들였다. 그리고 어떤 아이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바로 그런 곳이 진짜 공포가 존재하는 곳이라고.

나는 학교에서 매일 괴롭힘을 당했다. 두들겨맞고, 호모새끼라고 놀림당하고, 아니면 고문당해 멍이 들거나 피투성이가 되는 일 없이 무사히 집에 오는 날은 극히 드물었다. 인디애나 주 콜럼버스는 작은 마을이었고, 소설 "그것"의 데리 마을과 무척 닮았다. 우리 마을의 주민들도 데리 마을의 주민들과 무척 닮았다. 아이들이 괴물이 될 수 있었고, 어른들은 잘못된 것을 목격할 때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곤했다.

2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10살 때 처음 읽었던 소설 "그것"을 다시 읽게 되면 나도 모르게 등 뒤를 돌아본다. 등 뒤에 누가 있는지, 누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지 계속 확인한다. 그러고나면 내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게 된다. "뭐하는 거야, 미쳤냐?" 하지만 그래도 그것들은 항상 그 곳에 있는 것 같다. 그것들은 절대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니까.

어릴 때 접했던 공포는 어른이 돼서도 우리를 쫓아온다. 그게 바로 소설 "그것"이 진정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어린 아이였을 때도 나는 그 점을 이해했다. 어릴 때 경험하는 진정한 공포의 순간들은 평생 우리한테 붙어다니고, 언젠가 우리는 그 악령에 대항하기로 결심하고, 친구들의 작은 도움을 받아 그것과 맞서싸운다. 그 이야기 전체가 굉장히 뛰어난 은유였으며, 그것이 나를 작가가 되고 싶도록 이끌었다.

그리하여 10살 때의 나는 아버지의 타자기 앞에 앉아 위대한 미국 장편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집필을 마치고 보니, 그것은 그냥 2페이지 분량이었다. 그래도 아주 많은 피가 나오는 작품이었다. 나는 "워싱턴 스트리트의 살인"이 엄청 자랑스러웠고 우리 가족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작품 이름은 우리 할머니가 아직도 살고 있는 콜럼버스의 거리 이름에서 따왔다.) 자랑이 넘치다보니 그 해 말에 가장 존경하는 사람한테 편지를 쓰라는 학교숙제를 받자, 스티븐 킹한테 편지를 써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그 편지에 내 단편소설을 같이 넣었다.

편지를 내가 직접 보낸 기억이 없는 걸 보니, 틀림없이 그 당시 우리 선생님이 편지봉투에 우표를 붙여서 스티븐 킹이 사는 메인 주 뱅고어로 보냈을 것이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우편물 속에서 스티븐 킹이 나한테 보낸 우편봉투를 발견하던 날의 기억이다.

내 단편소설을 얼마나 즐겁게 읽었는지, 내가 10살 밖에 안됐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말해줄만큼 스티븐 킹은 친절했다. 그 다음에 그가 내게 해준 말이 지금까지도 나에게서 하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글쓰기를 절대로 멈추지 말거라.

또한 그는 매번 답장을 나한테 하기는 어렵겠지만 소설을 더 쓰게 되면 보내라고 나를 격려해주기도 했다.

나는 타자기 앞으로 달려가 난파당한 원양어선 안에 식인종이 나타나는 내용의 단편소설을 정신없이 써내려갔다. 스티븐 킹이 "워싱턴 스트리트의 살인"을 좋아하니 이번 단편소설에는 정말 감탄하시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에는 애처로울만큼 소심하고 사회생활이 서툰 주인한테 지나치게 충성하는 살인 고양이를 등장시킨 단편소설을 썼다. 단편을 쓸 때마다 솜씨가 나아졌고, 스티븐 킹은 자신이 작업 중인 신작소설이 무엇인지 알려주려고 전단지를 동봉한 짧은 감사편지 형식으로라도 이따금씩 나에게 답장을 보내주었다.

믿거나 말거나, 스티븐 킹의 격려 덕분에 얼마 지나지않아 내 글이 출판될 기회를 얻었다. 15살 나이에 팜므파탈 매거진의 전속기자가 된 것이다. 나의 기자 경력이 죽죽 쌓여갔고, 그 때문에 꽤 오랜 시간동안 소설쓰기에 대한 애정을 소홀히했다.

하지만 스티븐 킹 작품 읽는 것을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도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나는 계속 글을 썼으니까. 글의 형식은 다를지라도.

2016년이 되었을 때, 스티븐 킹 소설 한정판을 펴내는 Cemetery Dance 출판사는 킹이 쓴 이야기들 속에 담긴 지혜, 인생 교훈, 정신적 가르침을 다루는 "내가 스티븐 킹한테 배운 것(What I Learned From Stephen King)"이라는 정규칼럼을 써달라고 나에게 요청했다.

그 칼럼을 11개 쓰고 나니,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나는 스티븐 킹 책에서 수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지만, 그 어떤 것도 10살 소년의 편지에 응답했던 그 하나의 답장이 주었던 가르침만큼은 아니었다. 분명하게도 그 답장은 글쓰기를 절대로 멈추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하지만 내가 언젠가 자라서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에 대하여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까지 했다. 얼마나 유명하고 얼마나 비평적으로 찬사를 받던지간에 늘 시간을 내서 격려의 말을 해주는 어른의 모습. 다작을 하고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것 만큼이나 자애롭고 친절한 어른의 모습.

몇 달 전 벽장 속의 오래된 상자들을 뒤지다가 스티븐 킹의 그 편지를 발견했다.

글쓰기를 절대로 멈추지 말거라.

그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마법 같은 거라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이토록 세월이 흘렀는데도, 킹이 해준 격려의 말이 여전히 나에게 감흥을 일으켰다. 어릴 때 이후 처음으로 자리에 앉아 직접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결과 "오렌지 그로브 코트"라는 단편소설이 완성되었다.

Cemetery Dance 매거진 편집부의 좋은 사람들이 그 단편을 꽤 좋아해준 것 같고, 당신도 그러하기를 희망해본다. "오렌지 그로브 코트"는 2018년에 Cemetery Dance 매거진에 수록될 예정이다.

계속 글을 쓰도록, 그리고 오늘날 내 모습처럼 글쓰는 사람이 되도록 나에게 기운을 불어넣어 준 분이 바로 스티븐 킹인데, 이토록 세월이 흘러 내가 쓴 소설이 스티븐 킹 책을 내는 출판사의 잡지에 출판된다니 생각만해도 미칠것 같다.

"오렌지 그로브 코트"를 출판하고 싶다는 Cemetery Dance 출판사 편집자의 이메일을 받았을 때, 나는 흥분해서 펄쩍펄쩍 날뛰었다. 우편물 속에서 스티븐 킹의 편지를 발견했던 그 옛날의 내 모습과 똑같이.

그리고 10살이던 그 날과 똑같이, 나는 다음 단편소설을 쓰기 위해 책상 앞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