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슬립 / Doctor Sleep

작품 감상문 2014.05.11 23:30 posted by 조재형

Doctor Sleep

(2013년 장편소설)


소설 "Doctor Sleep"은 스티븐 킹의 1977년 소설 "샤이닝"의 속편이다.

까막득한 옛날에 썼던 소설의 속편이 이제서야 나오다니! (산수가 약한 나는 몇 년 만에 속편이 나온 것인지 알아보려고 계산기를 두드려야만 했다;;;;;)

스티븐 킹이 그 동안 독자들과 만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샤이닝"의 꼬마 대니 토랜스가 샤이닝 소설의 결말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하고, 스티븐 킹 본인도 문득문득 대니 토랜스의 안부가 궁금했던 적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샤이닝"처럼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유명한 소설의 속편을 집필한다는 것은 킹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대부분의 속편은 전편에 비해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니까. (킹이 생각하는 2가지 예외는 소설 "톰 소여의 모험"과 영화 "대부"의 속편이다.)

그래도! 스티븐 킹은 속편 집필의 부담감을 극복하고야 말았다! "Doctor Sleep"이 출간되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Doctor Sleep" 집필을 결정하면서 스티븐 킹은 전편인 "샤이닝"의 설정과 어긋나는 점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스티븐 킹은 소설 "스탠드"가 출간되고 나서 특정한 설정 오류를 지적하는 독자 편지를 200통 정도는 받았을 거라고 농담삼아 말한다.

"스탠드"의 어느 등장인물은 종이에 묻은 초콜렛 캔디바 자국을 보고 자신에게 닥친 위험을 예감하게 되는데, 독자들은 "그 상표의 캔디바에는 초콜렛이 들어가지 않아! 그러니 초콜렛 자국이 묻는 것은 말이 안되지!"라고 지적을 해왔다.

스티븐 킹은 말한다. "정말 재밌는 것은 그 캔디바 회사에서 몇 년 후 (2007년에) 초콜렛이 들어간 캔디바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스탠드 소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나? 껄껄껄~~"

아무튼 "Doctor Sleep"이 "샤이닝"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인 만큼 설정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킹은 스티븐 킹 소설 해설서를 펴낸바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설정 오류 발생에 조심하며 "Doctor Sleep"을 집필했다.

"샤이닝"에서 몇십 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대니 토랜스는 꼬마에서 성인으로 성장한 모습이 되었고,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병원에 근무한다는 설정이 만들어졌다.

과거에 스티븐 킹은 아침에 TV를 보다가 호스피스 병원에서 환자의 죽음을 예언한다는 고양이 오스카에 대한 뉴스를 보고 소설로 써보고 싶었는데, 마침 대니 토랜스가 호스피스 병원에 근무한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소설 "Doctor Sleep"에 그 고양이에 대한 내용도 추가로 넣었다.
(이 실존하는 고양이 오스카에 대한 내용은 국내에 "고양이 오스카"라는 번역서가 출간되어 있다.)

"샤이닝"의 속편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 나는 궁금했다.

"샤이닝"에서는 독자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위험요소들이 결국 사라졌는데... 일단 없어진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속편은 어떤 공포를 보여줄 것인가?

"Doctor Sleep" 출간이 되자마자 나는 서둘러 원서를 사놓기는 했는데, 생계를 유지하느라 바빠서 책을 한동안 방치하고 말았다 ㅜ_ㅜ

그러던 어느 날 밤 잠을 자기 전에 문득 "Doctor Sleep" 원서가 보여서 책을 펼쳐들고 처음 두 페이지를 읽었는데 이야기 속으로 훅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가만 있다가는 밤새 책을 읽게 될 것만 같아서 아쉽지만 책을 내려놓고 말았다. (먹고 사는 일에 바빠서 취미생활에 소홀하게 되는 아픔이... ㅜ_ㅜ)

그래도 그 후로 틈나는대로 짬짬이 "Doctor Sleep" 책을 읽어나가서 결국 책 다 읽었음~! 뿌듯함~!

소설 "Doctor Sleep"은 크게 3그룹으로 나뉘어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첫 번째 그룹. 성인이 된 대니 토랜스. 아버지가 그랬듯, 음주와 욱하는 성질 때문에 곤욕을 치르며 외로운 생활을 이어나가는 와중에 호스피스 병원에 근무하며 초능력을 이용해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두 번째 그룹. 초능력 소녀 애브라. 타고난 초능력이 자꾸만 표출되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걱정 또 걱정이다.

세 번째 그룹. 뱀파이어 집단.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인간의 특별한 에너지를 빨아먹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소설의 초중반은 이 3가지 그룹이 오랜 세월에 걸쳐 각자 살아가는 모습을 교대로 보여주는데, 나는 이 부분이 "샤이닝"의 속편소설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고 느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가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신비롭게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따스하게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지고, 그 속에서 틈틈이 서로간에 간접적으로 인연이 맺어지는 장면은 독자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한다.

본인의 일탈에 죄의식을 느끼며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는 대니와 타고난 초능력을 표출하는 것 때문에 불안해하는 가족들의 반응에 당황해하는 애브라와 양질의 인간 에너지를 빨아먹기 위해 서슴없이 인간사냥에 몰두하는 뱀파이어 집단의 모습이 번갈아가며 서술되면서 점차적으로 3그룹이 충돌하는 장면으로 압축되어가는 과정은 마치 환상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걸출한 일일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아아... 이 드라마가 끝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좋겠어~~~

그러다 애브라가 뱀파이어 집단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장면은... 쿠콰쾅~! 전율이 느껴질정도로 짜릿했다. 그 장면에서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에 휘말려 허우적대던 나는 스티븐 킹이 진짜 강력한!! 작가라는 것을 실감하고야 말았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3그룹이 서로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면서 아슬아슬한 암투가 시작된다.

강력한 에너지를 지닌 애브라를 차지하고자 추적을 시작하는 뱀파이어 집단. 이에 맞서 애브라 소녀를 지키기 위하여 뛰어드는 대니 토랜스. 대니 토랜스와 함께 뱀파이어 집단과 맞서는 애브라. 이 3그룹의 다툼이 시종일관 팽팽하게 그려진다.

특히 이들이 직접적으로 싸우는 장면의 기대치를 아주아주 높게 만들어놓는 스티븐 킹의 기술이 빼어난데, 싸움 그 자체를 보여주기 위해 서두르기 보다는 싸움을 앞두고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을 차분하게 풀어내는 것으로 앞으로 일어날 싸움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장면들이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그런 장면들을 읽고 있으면 막 조바심이 나고 책장을 넘기는 손이 덜덜 떨릴 정도다~~~

"Doctor Sleep" 소설 10분의 9까지는 굉장히 몰입해가면서 책을 읽었는데, 대니 토랜스 일행이 뱀파이어 집단의 두목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책의 마지막 10분의 1 분량에서는 이야기의 방향이 내 예상에서 빗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경기가 보고 싶어 TV의 스포츠채널을 틀었는데 정작 TV화면에서는 장기나 바둑 경기가 나와버리는 경우 같다고나 할까...

장기랑 바둑도 "마인드" 스포츠라고 해서 스포츠로 취급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스포츠의 모습과는 좀 거리가 있잖은가.

나는 "Doctor Sleep" 소설의 마지막 결투장면이 피가 튀고 살이 튀는 개싸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스티븐 킹이 뱀파이어 집단의 상황을 소설 10분의 9 분량까지 흥미롭게 묘사해서 나의 기대치를 끝도 보이지 않을만큼 높게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뱀파이어 집단이 양질의 인간 에너지를 얻기 위해 인간을 잔혹하게 고문하는 모습을 짧으면서도 강렬하게 묘사하던 장면이라던가, 뱀파이어 집단이 인간 소년을 평상시와 다름없이 건드렸다가 어처구니 없이 집단의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장면이라던가, 대니와 애브라 일행의 활약에 분노한 뱀파이어 집단의 대장이 피의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 등등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너무도 흥미롭게 만들어주었다.

최후의 대결에서 대니가 뱀파이어 집단에 뛰어들어 활약하는 순간의 아이디어도 캬아~ 정말 멋져서 뱀파이어 대장과의 결투를 더욱 기대하게 했다.

그런데 스티븐 킹은 소설 마지막 10분의 1 분량을 차지하는 뱀파이어 대장과의 결투에서 야구경기 대신 장기경기를 제시한다. 3분만에 신속하고도 말끔하게 끝나는 장기경기를.
(그러고보면 뱀파이어 대장은 장기판의 왕 같다. 여러 가지 이유로 소설 내내 일정한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니까.)

양쪽편이 직접적으로 서로 뒤엉켜 악을 쓰고 기를 쓰며 질척거리는 개싸움을 펼쳐주리라 예상한 나의 기대와는 좀 동떨어진 모습이 나오는데...

물론 대니 토랜스랑 뱀파이어 두목이 나를 찾아와서 "우리가 목숨을 걸고 있는 힘껏 싸울 때 편안하게 앉아 소녀시대 노래를 들으면서 여유롭게 책장이나 넘기고 있던 놈이!!"라고 항의하며 내 멱살을 잡는다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만...
(멱살을 잡혀야한다면 대니 토랜스 대신 뱀파이어 두목한테 멱살을 잡히고 싶다. 두목님 진짜 섹시 카리스마로 가득함. ♥_♥)

그리고 소설 초중반에서 강렬한 인상을 준 여러 요소들이 정작 마지막 결말에서는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는 점도 아쉬웠다.

하지만 마지막 10분의 1 분량이 내 기대를 벗어나 좀 아쉽다고 해서 소설 10분의 9 분량이 나에게 안겨준 재미와 감동이 없던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스티븐 킹은 "샤이닝" 속편을 집필하기까지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지만, 마침내 세상에 나온 "Doctor Sleep" 소설은 유명했던 전편의 명성에 어울릴 정도로 전체적으로 대단히 만족스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티븐 킹은 "샤이닝"의 속편을 집필 완료하면서 오랫동안 방치한 숙제를 끝낸 것 같은 후련함을 느꼈을 것 같은데, 이기적인 독자인 나는 "샤이닝"의 속편의 속편도 읽고 싶다.

오래 전 "샤이닝"을 읽고 난 독자들이 꼬마 대니 토랜스의 안부를 궁금해했듯, 나도 "Doctor Sleep"을 읽고 나니 살아남은 사람의 그 이후의 인생이 무척 궁금해진다.

이에 대한 답변은 스티븐 킹 아저씨만 할 수 있으니까 제발 플리즈~~ >_<

p.s. 이 책은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닥터 슬립"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판을 번역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