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랜드 / Joyland

작품 감상문 2013. 8. 14. 00:30 posted by 조재형

J o y l a n d

(2013년 장편소설)

어느 날 스티븐 킹한테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휠체어에 탄 소년이 해변에서 연을 날리고 있는 이미지.

이 이미지를 스티븐 킹은 20년 동안 머릿 속에서 굴렸고, 최초에는 단편소설로 만들어질 줄 알았던 이미지가 점점 불어나서 결국 "Joyland"라는 장편소설이 되었다.

1973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Joyland"에서 대학생 드빈 존스는 기분전환 삼아 "조이랜드"라는 놀이공원에서 알바로 일하게 된다.

놀이공원의 다양한 시설을 오가며 정신없이 고객서비스에 열중하던 드빈은 조이랜드 괴담을 듣는다.

오래 전에 조이랜드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억울하게 죽은 여자가 귀신이 되어 나타난다는 괴담에 흥미를 느낀 드빈.

그리고 드빈은 휠체어에 탄 소년을 만나게 되고, 괴담과 소년이 얽혀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게 된다.

소설 "Joyland"가 참 신기한 게 소설 분량의 대부분이 주인공의 알바 체험을 묘사하는 내용으로 채워져있다는 것이다. 놀이공원에서 이런 일을 하고, 저런 일을 하고, 출퇴근을 하고, 또 놀이공원에서 이런 저런 일을 하고 하고 또 하고~~~

독자를 흥분시킬만한 격렬한 폭력사건이 줄줄이 튀어나오기는 커녕, 주인공의 평온한 일상을 줄줄이 소개하는데도 책의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힘이 살아있다.

일상 묘사의 압권은 드빈 존스의 알바 첫날을 그려내는 장면이다. 놀이공원 알바의 고단한 하루가 실감나게 묘사되어 마치 내가 드빈 존스가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없이 조이랜드를 종횡무진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순간 아래와 같은 이미지에 공감을 하게 되었다. 놀이공원 알바 힘들구나 -_-;;;;;;

이렇게 조이랜드 알바생의 일상을 길~게 풀어내는 와중에 스티븐 킹은 슬쩍 조이랜드 괴담을 투척하고, 주인공의 알바생활을 계속 묘사하고, 휠체어 탄 소년을 등장시키고, 조이랜드 괴담을 재등장시키고, 주인공의 일상을 계속 묘사해나간다.

주인공의 하루를 계속 묘사해나가는 평온한 분위기인데도 독자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페이지를 계속 넘기도록 하는 힘은 스티븐 킹의 재능,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글솜씨에서 나온다.

"활자" 매체인 소설의 장점을 100% 발휘하여 스티븐 킹은 자꾸만 독자에게 끝없는 불안감을 선사한다.

"지금 이 장면은 평화롭기만 하지만 방금 읽은 문장으로 추측하건대 다음 페이지에서는 뭔가 안 좋은 일이 터질거야."
"그래서 다음 페이지를 읽어봐도 평온한 내용이지만 방금 등장인물의 대사로 추측하건대 다음 페이지에서 정말 뭔가 안 좋은 일이 터질거야."
"계속 계속 다음 페이지를 넘겨봐도 평화롭고 오히려 감동적인 내용까지 펼쳐지지만... 이것 봐! 책 분량이 얼마 안 남았잖아. 다음 페이지에선 진짜 안 좋은 일이 터질거라고. 이건 스티븐 킹 소설이니까!"

놀이공원 알바생의 일상에서 은근히 신경 쓰이는 불안감을 자꾸만 접하게 되는 독자는... 불안감을 확인하고픈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도저히 책을 내려놓지 못하고... 쉴새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책 분량이 얼마 안 남았는데도 느긋하게 주인공의 일상을 그려나가며 독자의 호기심을 툭툭 건드리는 스티븐 킹의 글솜씨 때문에 나는 남아있는 책 분량을 자꾸만 확인하며 조바심을 내며 잔뜩 긴장하면서 소설을 읽어나갔다.

그러다 마침내 스티븐 킹은 독자의 멱살을 움켜쥐고 뒤흔드는 패기를 발휘한다. 이야기의 절정에서 킹은 그 동안 쌓아온 자잘한 떡밥들을 총출동시켜서 그야말로 허리케인처럼 격렬하게 독자를 흥분시킨다.

스티븐 킹 아저씨 진짜 멋졌다. 아 뿅가죽네~ *_*

소설 "Joyland"는 상당히 알뜰하고 효율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한정된 등장인물들이 적당한 때에 등장해서 적당한 때에 퇴장하고, 이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촘촘하게 엮어 소박하지만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완성시킨다.

앞서 언급한대로 등장인물의 평온한 일상 묘사로 소설 분량의 대부분을 채우면서도, 독자가 다음 페이지를 계속 넘기도록 긴장감을 유지해나가는 킹의 솜씨가 참 좋다.

스티븐 킹은 커다란 스케일의 이야기도 잘 쓰지만, 작은 스케일의 소박한 이야기도 "역시" 잘 쓴다는 사실을 새삼 또 실감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Joyland"가 출간되기 전에 편집자가 이 소설의 결말을 읽고 울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나도 이 소설을 읽고 편집자의 글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등장인물에게 애착을 가졌던 독자라면 이 소설의 결말에서 뭉클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던데, 나는 스티븐 킹 소설들 때문에 도대체 몇 번을 운건지... ㅜ_ㅜ 눈에다 기저귀라도 차야할 판이다. -_-

p.s. "Joyland"는 황금가지출판사에서 "조이랜드"라는 제목으로 한국어판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