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천사 / Firestarter

작품 감상문 2013. 3. 10. 01:47 posted by 조재형

Firestarter

(1980년 장편소설)

 

스티븐 킹 소설 "스탠드" 초반을 보면,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전염병 사태를 딸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스타키 장군이 등장한다.

장군은 기지에서 도망친 군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려고 생각한다.

덕분에 그는 도망칠 시간을 벌었던 데다가, 목장 부근의 산길을 이용할만큼 영리했고 차가 수렁에 빠질만한 길을 피해갔을만큼 운도 좋았지. 일이 이렇게 되자 체포 임무를 주 경찰에 맡길지, FBI에 맡길지 아니면 양쪽 다에 맡길지 누군가는 명령을 하고 결정을 내려야만 했는데 그 사이에 그 전설적인 사나이는 여기, 저기, 사방팔방을 누볐단다. 누군가가 비밀 기관인 '상점'에서 그 일을 맡아야한다고 결정했을 때, 이 행복한 개자식은, 이 행복한 '환자' 개자식은 텍사스까지 도달해버렸고...

스티븐 킹의 1980년 소설 "Firestarter"는 미국 정부의 비밀조직 "상점(The Shop)"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물론 "The Shop"은 스티븐 킹이 만들어낸 가상의 조직이다.
("Firestarter"는 예전에 "저주받은 천사"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다.)

"The Shop"은 외계인, 초능력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과학적으로 조사하는 기관인데, 업무수행 과정에서 윤리적, 법적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무자비한 비밀요원들을 동원하여 납치, 살인을 서슴치 않는다.

소설 "Firestarter"의 처음부분은 아버지 앤디가 8살난 딸 찰리를 데리고 도시 한복판에서 The Shop의 요원들한테 쫓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런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어지면서 아버지 앤디의 회상장면을 통해 어쩌다 두 부녀가 비밀조직한테 쫓기는 신세가 되었는지 알려준다.

앤디는 돈이 궁하던 대학생 시절에 대학이 정부와 합동으로 실시하는 약물실험 아르바이트에 지원하는데, 그 실험이 사실은 The Shop이 주관하는 비밀실험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른 대학생 지원자들과 함께 교내에서 약물실험에 참여한 순간, 앤디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이고... 무시무시한 체험을 하게 된다. 꿈인지 현실인지 경계가 모호한 이 체험을 묘사하는 스티븐 킹의 문장력이 좋다.

약물 투입 후 보고 듣는 모든 것을 믿어도 좋은 것인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관찰하게 되는 앤디의 속마음을 약에 취한 나른한 감정에 실어 독자를 휘어감는다.

그리고 이 실험의 부작용(?)으로 앤디한테는 다른 사람의 정신을 지배할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기는데, 이 때까지도 앤디의 인생은 그럭저럭 괜찮다.

그런데 앤디가 결혼을 하고 딸이 생기면서 The Shop이 딸 찰리한테 눈독을 들이게 되자 앤디의 인생이, 찰리의 인생이 피곤해진다.

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초능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감정이 격해지면 눈에 보이는 주변환경에 불을 일으키는 초능력.

The Shop이 찰리를 손에 넣으려고 본격적으로 움직이면서 앤디의 가정은 파탄나고, 혈육을 지키기 위한 앤디의 눈물나는 도피행각이 이어진다.

소설 "Firestater"의 전반부를 이루는 분위기는 "피곤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열 받으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불을 질러버리는 아기를 키우게 된 부모들이 느끼는 피곤함, 비밀요원들을 피해 다급하게 도망다니느라 육체적/정신적으로 망가져가는 아버지 앤디의 피곤함, 그런 아버지를 따라다니느라 힘들어하는 딸 찰리의 피곤함.

"리얼"한 피곤함이다. 초자연현상을 조사하는 비밀조직, 비밀요원, 초능력자 같은 것들이 소설을 위한 인위적인 설정이지만, 이런 극적인 설정 속에 갇힌 인간들이 겪는 처절한 감정은 상당히 현실적이어서, 독자인 나한테까지도 이들의 피곤함이 실감나게 느껴졌다.

8살난 딸을 The Shop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초능력을 사용하게 되는 앤디가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신체적 손상을 입게 되면서,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처지와 딸의 처지를 걱정하는 장면에서는 앤디가 너무도 안타까웠다. ㅜ_ㅜ

찰리의 초능력은 스티븐 킹의 다른 소설 "캐리"에서 주인공 캐리 화이트의 초능력인 염력에 불이 더해진듯한 모습이다. 소설 "Firestater" 속에서 The Shop이 찰리의 초능력에 열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는 모습이 이해가 될만큼 찰리의 초능력에 담긴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엄청나다.

이런 초능력 주인공이 등장하니까 화려하게 초능력이 발산되는 장면들로 가득찬 액션소설이 될 것 같은 기대를 할 수 있겠지만, 스티븐 킹 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특히 소설 "캐리"를  잘 아는 독자라면, 소설 "Firestarter"가 액션소설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Firestarter"에는 당연히 찰리의 초능력을 뽐내는 장면이 몇 차례 나오기는 하지만, 다른 스티븐 킹 소설처럼 등장인물들간의 관계가 맞물려 돌아가는 드라마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찰리가 초능력을 발휘할 때면 상황묘사의 달인 스티븐 킹 선생의 글빨이 활활 타오른다.)

이 소설은 두 부녀와 The Shop 사이의 심리대결, 밀고 당기기, 즉 "밀당"이 어떤 결과로 치닫게 될 지 기대하게 만드는데서 끈끈한 긴장감을 창출해낸다.

앤디와 찰리가 초능력자이기는 하지만 The Shop 요원들이 쪽수의 우위로 달려드는 "다구리" 앞에서 쩔쩔 매는 한편, The Shop이 완벽하고 철두철미한 조직은 아니라는 점이 부각되기도 한다.

결국 The Shop은 인간들로 이루어진 조직이고, 사람들이 일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소설에서는 The Shop이 과거에 비밀임무를 수행하면서 저지른 실책과 이 실책을 무마하느라 행한 조치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앤디와 찰리를 상대하면서도 The Shop은 의외로 허술한 모습을 보이게 되어 이것이 앤디와 찰리한테 행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행운이 결국엔 앤디와 찰리를 옥죄는 함정으로도 작용한다는 것이 독자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과연 앤디와 찰리는 영악한 The Shop 요원들한테서 무사히 탈출해서 인간다운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소설 속에서 부녀의 고생이 심해질수록 결말이 어떤 식으로 맺어질지 궁금하기만하다.

두 부녀의 처절한 투쟁을 보면서 독자들이 맞이하게 되는 결말은... 열린 결말이다.

스티븐 킹은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The Shop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아가야하는 곳의 조건을 몇 가지 제시하게 되고, 결말에서는 우리의 주인공이 그 곳을 찾아간다.

그 곳은 허구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어서, 소설 "Firestarter"가 출간되었을 때 이 실재하는 곳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정부기관의 악행으로 불안해진 주인공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이라니~! 스티븐 킹한테 엄청 좋은 평가를 받은 거잖아?

그리고 그 후 우리의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지도 궁금하다. 이렇게 주인공의 미래가 걱정될 정도로 이 소설을 읽는 동안 흠뻑 빠져지냈다.

국내에는 스티븐 킹의 최신작 위주로 번역출간되고 있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과거의 작품들도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스티븐 킹은 예나 지금이나 어쩜 이리도 재밌는 이야기들을 수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지 감탄스럽기만하다.

찰리가 시선을 보내는 곳마다 불꽃이 피어난다. 스티븐 킹이 시선을 보내는 곳마다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찰리는 Firestarter, 그렇다면 스티븐 킹은 Storystarter다. 스티븐 킹 아저씨 짱~~~~

소설 "Firestarter"는 1984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어린 시절의 드류 베리모어가 찰리역할로 나와 열연을 펼친다.

이 영화에서도 마지막에 주인공이 어떤 장소를 찾아가는데, 원작소설과는 다른 곳이다. -_-;;;;;

2002년에 "Firestarter 2: Rekindled"라는 TV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