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 / The Stand

작품 감상문 2007.05.12 02:10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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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and

(1978년, 1990년 소설)

소설 <샤이닝(The Shining)>을 완성하기 5년쯤 전에, 나는 한 달 동안 <The House on Value Street>라는 새 소설을 쓰는 일에 착수했다. 그것은 부유한 집안의 딸 패티 허스트가 SLA(캘리포니아를 거점으로 활동한 좌파 폭력조직)에 납치된 뒤 세뇌당해(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사회정치적인 현실에 눈을 뜨게 된 것이라고 평가할 지도 모르겠지만) 은행털이에 가담하게 되고 로스 앤젤레스에 있는 SLA 은신처에서 벌어진 경찰과의 총격전에서 달아나 -당연히 내가 쓰는 소설에서 그 은신처는 밸류 스트리트에 있었다- 전국을 떠돌며 도망자 생활을 하다 결국 체포되어 온 미국을 발칵 뒤엎은 실제사건을 소설로 쓰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매우 구미가 당기는 주제였는데, 수많은 논픽션 책들이 그 사건을 다루었지만, 나로서는 그 사건에 얽힌 모든 부조리한 상황들을 성공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단 하나의 소설-바로 내가 쓰는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설가라는 사람은 결국 신이 내려보낸 거짓말장이기 때문에, 머리와 용기를 꽂꽂이 세우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기만 하면, 거짓말 속에서도 살아숨쉬는 진실을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소설을 쓰지 못했다. 나는 구할 수 있는 모든 조사자료를 다 긁어모은 다음(그 당시는 아직도 패티가 잡히지 않고 도주 중이어서 나는 더욱 흥미를 느꼈고, 내 나름대로 결말을 생각해 두고 있었다), 소설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나는 소설 한쪽 귀퉁이를 공격해 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쪽을 공격해서 잠시나마 가능성을 맛보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내가 만든 모든 등장인물들이 호레이스 맥코이의 소설 <They Shoot Horses, Don't They?>에 등장하는 댄스 마라톤에 빠져 허우적대는 듯한 참담함만을 맛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사건의 중간부분에서부터 소설을 시작해 보려고도 했다. 심하게 글이 막힐 때마다 때때로 나를 구해줬던 방식대로 사건이 연극무대 위에서 벌어진다고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 어떤 방식도 효험이 없었다.

멋진 소설 <The Hair of Harold Roux>에서 작가 토머스 윌리엄스는 긴 소설을 쓴다는 것이 넓디넓은 시커먼 들판에 등장인물들을 한데 모아놓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등장인물들은 작가가 만들어낸 작은 모닥불 주위에 빙 둘러서서 불길에다 손을 녹이며, 열기만큼이나 더욱 환히 빛나도록 모닥불이 더 크게 타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불이 꺼지면, 모든 빛이 다 사라져버리고, 등장인물들은 어둠 속에 묻혀 버린다. 이것은 소설 집필과정에 대한 사랑스러운 은유법이지만, 아무래도 내 방식은 아니다... 아마도 너무 부드러운 은유법이라서 내 방식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나는 항상 장편소설을 커다란 검은 성채라고 생각해 왔다. 무력이나 책략에 의해 경비탑이 무력화된 성채다. 이 성으로 통하는 모든 입구가 훤히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격렬한 포위공격 같은 것은 필요치 않아 보인다. 성 외벽에 끌어올려져 있던 다리가 땅에 내려와 있다. 모든 문들이 열려 있다. 성벽 위에 붙어있는 감시탑에 활쏘는 병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는 성 안으로 무사히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오직 단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섣부르게 나머지 다른 길들로 들어섰다가는 어딘가에 은밀히 매복하고 있던 적들로부터 기습을 당해 전멸하고 말 것이다.

내가 쓰고자 했던 패티 허스트 소설의 경우에, 나는 무사히 들어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을 전혀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6주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무언가가 내 마음 속을 아주 조용히 성가시게 만들었다. 그것은 전에 읽었던 신문기사의 내용이었다. 유타 주에서 생화학무기 유출사고가 일어났다는 신문기사. 저장실로부터 온갖 나쁘고 역겨운 병원균들이 뛰쳐나와 양들을 떼죽음 시켰다. 그리고 그 뉴스기사에서는 만약 바람이 반대방향으로 불었더라면 솔트레이크 시티에 사는 순진무구한 시민들에게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그 신문기사를 생각하고 있자니 죠지 R. 스튜어트가 쓴 소설 <Earth Abide>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스튜어트의 소설에서는 전염병이 돌아 인류 대부분을 몰살시키는데, 때마침 뱀에 물려 면역이 생기게 된 주인공이 살아남아 인류가 사라진 이후 일어나는 자연 생태계의 변화를 목격한다. 이 스튜어트의 길고긴 소설의 전반부는 황홀하다. 후반부는 결말을 향해 더욱 힘차게 치고 올라간다. 스토리의 비중이 덜한 대신 생태학적인 면이 더욱 부각된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콜로라도 주 보울더에 살았는데, 아바다 시에서 나온 교회 전도 차량이 정기적으로 돌아다니며 확성기로 방송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전도하는 사람이 원고 읽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모든 세대에서 꼭 한 번씩은 전염병이 사람들 속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나는 그 소리가 맘에 들었다 -성경 구절처럼 들렸는데 사실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문장을 적은 다음에 타자기 위에다 붙여 놓았다. 모든 세대에서 꼭 한 번씩은 전염병이 사람들 속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이 문장과 유타 주 생화학무기 유출 신문기사와 스튜어트가 쓴 멋진 소설에 대한 나의 기억이 패티 허스트와 SLA에 대한 생각과 이리저리 얽히고 설켰다. 그리고 어느 날 타자기 앞에 앉아서 벽을 타고 들려오는 소름끼치는 설교방송과 보기만 해도 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타자기에 끼워놓은 텅 빈 원고종이 사이에서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고 있었을 때, 나는 글을 썼다. 무언가를 꼭 써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상이 끝장나 버렸지만, SLA의 모든 조직원들은 면역이 생겨서 살아 남았다. 뱀에게 물렸던 것이다. 나는 내가 써놓은 글을 잠시 바라보다, 또다시 타자기를 두드렸다. 더 이상 석유 부족은 없다. 유쾌한 기분이 드는 글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무서운 기분이 드는 글이었다. 세상에 더 이상 사람들이 없으니, 더 이상 석유 송유관도 필요가 없다. 나는 더 이상 석유 부족은 없다 문장 밑으로 빠르게 글을 이어갔다. 더 이상 국가간 냉전은 없다. 더 이상 환경오염은 없다. 더 이상 악어 핸드백은 없다. 더 이상 범죄는 없다. 휴식의 계절. 나는 마지막 문장이 맘에 들었다. 내가 꼭 써버리고 싶어하던 그 무언가를 찾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작은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이글스 노래를 들으며 한 15분 정도를 가만히 앉아있다가 글을 썼다. 도널드 디프리즈는 다크맨(dark man)이다. 디프리즈(SLA의 리더)가 흑인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뜻은 아니었다. 패티 허스트가 가담했던 은행강도 사건을 보도한 기사에 실린 사진을 보면 디프리즈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 마음 속에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서 그는 무식하게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그저 어림짐작으로만 살펴 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얼굴 없는 다크맨이라는 문구를 쓰고는 위를 올려다 보았다. 또다시 타자기 위에 붙여놓은 오싹한 짧은 문장이 눈에 띄었다. 모든 세대에서 꼭 한 번씩은 전염병이 사람들 속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작이었다. 그 뒤로 나는 2년 동안을 꼬박 언제까지고 끝이 없을 것 같은 <The Stand>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는 데 매달렸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친구들에게 요즘 나만의 작은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 있노라 하소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죽도록 고생해서 수백페이지를 쓰고 나서야 겨우 터널 끝이 보일락 말락 할 거라고 죽는 소리를 해댔던 것이다. 완성된 원고는 1200페이지가 넘었고, 내가 좋아하는 볼링공 무게와 같은 5킬로그램 무게를 자랑했다. 어느 6월의 따뜻한 밤, 나는 그 원고를 유엔 플라자 호텔에서 13블럭 떨어져 있는 내 담당 편집자가 사는 아파트에 가지고 갔다. 아내는 그녀 본인만이 알고 있을 독특한 이유로 인해 그 거대한 원고 전체를 비닐랩으로 싸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나는 세네번 정도 원고뭉치를 이쪽 팔에서 저쪽 팔로 번갈아가며 들고가다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지금 3번가 거리를 걷다 죽을 것이다. 출동한 응급구조대가 하수구 속에서 큰 대자로 뻗어 심장마비로 죽어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응급구조대가 발견한 내 괴물원고는 비닐랩 속에 들어있는 채로 쭉 뻗은 내 손 옆에 의기양양하게 드러누워 있을 것이다. 괴물원고가 결국 나를 누르고 승리자가 되었다.

내가 정말로 <The Stand>를 증오한 적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 소설을 억지로 쓰고 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소설 속에서 보울더에 모여든 사람들이 심각한 불행을 겪고 있었을 때 조차도, 나는 소설을 통해 터무니없이 유쾌상쾌통쾌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타자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랜들 플랙이 까마귀로도 변하고 늑대로도 변하는 세상, 석유 욕심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두고 커다란 전투가 벌어지는 그  세상 속으로 빠져들고 싶어 한 시도 기다릴 수가 없었다. 전세계가 무덤으로 변했는데, 그 위에서 나 혼자 흥겹고 즐겁게 탭댄스를 추는 것 같은 기분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소설을 쓰는 동안은 전세계, 특히 미국에게도 고통스런 시기였다. 역사적인 제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났고, 닉슨 행정부가 불행한 결말을 맞이해서 역사적인 최초의 대통령 사임이 있었고, 동남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처참하게 패배했고, 낙태의 자유 논쟁에서 시작해 무서운 속도로 치솟는 인플레이션 사태까지 국내문제로 어수선한 시국이었다.

나는 어땠냐고? 나는 직업적인 괴로움에 지긋지긋하게 시달리고 있었다. 그 4년 전에 나는 시급 1달러 60센트를 받으며 대형 세탁공장에서 시트천을 다림질하고 있었고, 누추한 트레일러 하우스 보일러실 안에서 소설 <캐리(Carrie)>를 쓰고 있었다. 그 때 1살 정도였던 내 딸은 맨날 여기저기서 얻어 온 옷만 입히고 있었다. 그 1년 전에 나는 아내 태비사와 결혼하느라 양복을 빌려입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나한테는 몸에 맞지 않게 너무 큰 양복이었다. 근처에 있는 햄든 고등학교에 교사 자리를 얻게 돼서 나는 세탁공장에 이별을 고했지만, 아내 태비사와 나는 교사 연봉이 6400달러여서 내 세탁공장 봉급보다 별로 많지도 않다는 것을 알고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다음 해 여름방학 때는 다시 세탁공장 일에 손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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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스티븐 킹이 쓴 공포비평서 <죽음의 춤(Danse Macabre)>에 나오는 내용이다.

윗글에서 언급된 스티븐 킹의 소설 <The Stand>는 우리나라에 번역출간 되었다. 정음문화사에서 <미래의 묵시록>이라는 제목으로 펴냈었고(삭제판), 황금가지 출판사에서는 <스탠드>라는 제목으로 펴냈다(완전무삭제판).

미군 비밀연구소에서 애지중지하던 치명적인 세균무기가 그만 세상 밖으로 유출되는 사건이 일어나 버린다. 세상 사람들은 전염성 강한 세균무기에 감염되어 다 죽어버린다. 그러나 예외없는 법칙은 없다는 말대로 인류가 다 죽은 마당에 행운인지 불행인지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꾸만 두 가지 꿈을 번갈아 꾸게 된다.

하나는 쭈글쭈글 할머니가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꿈. "♬~날 보러 와요, 날 보러 와요. 괴로울 땐 나를 보러 오세요, 슬퍼질 땐 나를 보러 오세요. 우리 모두 모여 다같이 착하게 살아 BOA요."

또 하나는 시커먼 남자가 으스스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협박하는 꿈. "♬~학교 가기 싫은 사람, 회사 가기 싫은 사람 모여라. 하여튼 거칠게 막가는대로 놀고 싶은 사람 여기 모여라. 안 모이면 나한테 혼날 줄 알아. 뭐? 싫어? 싫으면 시집 가!"

텅 빈 세상에 홀로 남겨진 전국 각지의 생존자들은 두 가지 꿈에서 갈등하다 적성과 취향을 고려해 한 쪽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할머니가 있는 콜로라도 주 보울더에, 또 어떤 사람들은 시커먼 남자가 있는 라스베가스에 모여든다. 하지만 모름지기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줄을 잘서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할머니가 있는 보울더 쪽 사람들은 착하게 살고 싶었지만, 시커먼 남자 랜들 플랙이 "관리"하는 라스베거스 쪽은 사정이 달랐다. 랜들 플랙은 오직 인간의 고통을 위해 태어난 인간이 아닌 존재였으며, 그는 보울더 쪽 사람들을 확 쓸어버리기 위해 전쟁을 준비한다. 일이 이쯤되자 착하게 살고 싶은 보울더 쪽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그에 맞설 준비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들은 거대한 랜들 플랙의 힘에 압도되어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데다 업친데 앗싸 덮친 격으로 내분이 일어나기까지 한다. 그리고 계속 두 집단이 맞부딪칠 결전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과연 보울더에 붙은 사람과 라스베거스에 붙은 사람 중 누가 더 줄을 잘 선 것인가? 최후에 웃는 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과연 그 최후에 웃는 웃음이란 것이 진정으로 기쁨의 웃음이 될 것인가? 끝은 그저 끝일 뿐인가? I don't know.

내가 처음 <스탠드>를 손에 쥐었을 때 처음 생각난 것은 킹의 또다른 소설 <IT>이었다. <IT>만큼이나 두껍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스탠드> 영문 페이퍼백은 1141페이지짜리였다. 그 묵직한 무게감에 나는 설레이기 시작했다. 과연 이 거대한 책은 <IT>만큼이나 나에게 재미와 흥분과 쾌감과 황홀과 아름다움을 선사해 줄 것인가? <스탠드>를 다 읽고 나서 나는 이 거대한 책이 그 부피만큼이나 나에게 거대한 재미와 거대한 흥분과 거대한 쾌감과 거대한 황홀과 거대한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었다는 것을 눈물을 흘리며 콧물을 쏟으며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과거는 마법의 시대였다. 과학지식이 없었기에 마법 내지는 마법에서 생겨난 속설들을 무조건 막연히 믿고 의지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였다. 그러나 현대로 접어들면서 과학의 시대가 찾아왔다. 마법으로 알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대부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마법은 과학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과학은 마법의 영역을 차지해 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마법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면 재미없다. <스탠드>를 집필하면서 스티븐 킹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세상에 전염병이 퍼져 나간 후 마법이 생겨 났도다." 인간의 과학이 만들어낸 세균무기로 인해 인류가 파멸하면서 과학의 시대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 틈을 비집고 마법같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과학의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마법의 시대가 컴백한 것에 적응이 안돼 고통스러워하며 혼란을 겪는다. 그 혼란의 한가운데에 마법이 인간에게 주는 공포와 두려움과 불안감을 그대로 간직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 다크맨 랜들 플랙이 있다.

<스탠드>의 전반부는 세균무기로 인해 치명적인 전염병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인류를 파멸시키는 모습들을 죽 늘어놓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감염된 줄도 모른 채 막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은 물론 그냥 스쳐지나가는 사람들까지도 마구 전염시켜 놓는다. 이 부분을 묘사하는 킹의 글은 흥겨운 리듬이 넘쳐난다. 이쪽 감염, 저쪽 감염, 여기 감염, 저기 감염, 앞집 감염, 뒷집 감염, 옆집 감염, 너도 감염, 나도 감염, 우리 모두 감염. 어디를 가든 거리를 봐도 건물 안을 봐도 온통 전염병에 걸려 죽은 시체들이 즐비하다. 사실 인류의 파멸을 뜻하는 심각한 장면이지만, 그 과정을 묘사하는 글은 경쾌하고 속도감 있게 그려져서 스티븐 킹이 이 장면을 쓰며 즐거워 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물론 나도 즐거웠다. 마치 흐느적대며 흥청거리는 변태파티를 벽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몰래 지켜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짧은 흥청거림이 끝나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인류는 파멸해 있다. 그리고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이 펼쳐내는 지옥같은 행동들이 소설 속을 가득 메운다. 킹은 그 추악한 모습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정밀하게 독자 앞에 펼쳐 놓는다. 조직화된 사회가 무너지고 난 뒤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시키지도 않았는데 약육강식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며 폭력과 살인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모습들은 초반에 잠시 이성을 잃고 흥겨웠던 기분을 뜨끔하게 만든다. 결국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이 스티븐 킹의 무서운 소설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불어닥친 단편적인 사례들을 거침없이 죽죽 늘어놓으며 암울하고 불안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차곡차곡 반듯하게 쌓아놓는 킹의 솜씨가 참 맛깔스럽다.

그러면서 차츰 이 소설을 끌고갈 주요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들도 다른 생존자들과 마찬가지로 망해버린 세상 속에서 갈팡질팡한다. 이전에 있었던 조직화되고 꽉 짜여진 사회가 그대로 존재했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도, 한결같이 모두들 극단적으로 비참하게 변해버린 상황 속에서 아주 사소한 일로도 괴롭게 몸부림친다. 스티븐 킹은 그들 앞에 괴로운 일들만 잔뜩 선물한다. 이 모두가 의지하던 사회가 사라져버린 탓이다. 그렇게 비참하게 외롭던 그들은 꿈을 통해 신기한 능력을 지닌 할머니와 다크맨 랜들 플랙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비로소 의지할 대상을 알게 되고 기꺼이 한 쪽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스탠드>는 할머니와 랜들 플랙을 구심점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사회를 조직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로 할머니를 찾아 모인 보울더 쪽 모습을 보여준다. 그냥 막연히 사람들이 모여서 할머니한테 의지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염병으로 죽은 시체들을 치우고, 전기를 복구하고, 대표자를 뽑아 사회를 만들어나간다. 그런데 좋은 쪽으로만 나가던 일이 삐그덕거린다. 누군가 술, 돈, 여자를 범죄의 3요소라고 말했었다(아마도 영등포 경찰서 강력계 수사 "부"반장이 했던 말이 아닐까?). 3요소 중 여자문제로 불행의 씨앗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이 랜들 플랙의 강력한 어둠의 힘이 만들어낸 유혹이 빚어낸 결과다. 게다가 랜들 플랙은 할머니를 보고 보울더에 모여든 사람들을 상대로 전쟁준비를 착실히 진행시키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는 이런 위험요소들이 거침없이 쑥쑥 자라나서 독자를 꽉 죄어 버리고 과연 보울더 사람들이 어떻게 이 거대한 악의 화신 랜들 플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으로까지 만들어 버린다.

스티븐 킹은 <스탠드>를 쓰면서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스탠드>를 평가한 리뷰들 중에서 소설 속에 나오는 주요 캐릭터 스튜 레드먼을 <반지의 제왕>에서 동료 호빗들을 데리고 모험을 떠나는 프로도에 비유한 리뷰가 가장 맘에 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스탠드>는 <반지의 제왕>이 아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중간계라는 배경이 <스탠드>에 나오는 전염병으로 파멸한 현대문명과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스탠드>에서 <반지의 제왕>같은 대규모 스펙타클 개떼 전투장면을 기대했다가는 매운 슬픔을 맛보게 될 것이다. <스탠드>는 조용한 소설이다. 그대신 <스탠드>는 스티븐 킹의 장기인 치밀하고 자세한 등장인물들간의 심리묘사를 중점적으로 파고 든다. 이런 부분들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등장인물의 개인적인 느낌과 사연들을 스토리와는 큰 관련이 없는데도 길게 늘어놓는 것이 너무한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로 인해 독자들은 등장인물들을 속속들이 친밀하게 느끼게 된다. 이 소설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그냥 나왔다 사라지는 엑스트라가 아니라 다들 소설 속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별다른 설명 없이 스토리 전개에 필요한 말만 하게 하고 침묵을 지키도록 만들었다면, 독자들은 이 많은 등장인물들이 그저 소모품으로만 느껴지고 이들에게서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그들 모두에게 마음껏 자기들의 느낌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 주었다. 때로는 그들의 자유 때문에 읽는 독자들이 지칠 수도 있겠지만, 캐릭터들의 자유를 통해 독자들은 그들이 마치 친구라도 되는 것 같은 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길고 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그동안 정 들었던 것 때문에 아쉽고 슬프고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공포소설가 클라이브 바커가 자신의 작품관을 밝혔던 말이 <스탠드>에서도 맞아떨어질 것 같다.

[남녀 주인공이 해질녘 손에 손을 잡고 걸어서는 안 된다. 희생이 있어야만 한다. 아마도 많은 상실-사랑의 상실, 수족의 상실-이 있을 것이다. 아무도 생존자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생존자들이 처음 시작할 때와 똑같은 상태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사건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주 기초적인 방식으로 변형이 일어날 수 있다. 살아서 시작했다가 죽어서 끝나는 것이다. 수족을 잃기도 하고, 제정신을 읽기도 한다.]

<스탠드>에서 결말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읽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느낌이 다를 수도 있다. 추리소설처럼 주인공이 일정한 논리를 가지고 확신에 차서 이차저차해서 여차저차하게 범인을 체포하는 식으로 결말의 스토리 전개가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과정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스탠드> 결말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알지도 못하고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들은 그저 느낌이 인도하는 대로 몸과 마음을 이끌어 나간다. 그렇게해서 나오는 결말은 그들이 의도해서 나온 결말도 아니고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말도 아니고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결말도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고, 소가 뒷걸음치다 미키 마우스 발 걸어 넘어뜨리는 격이고, 안개 속에서 시력검사하는 격이다. 마지막까지도 주인공들 앞에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어서 그들은 괴로워한다. 길고 긴 소설을 그들과 함께 하느라 이제는 정이 푹 들어버린 나도 그들과 함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막연한 상황 속에서 괴로워하며 슬퍼했다. 이런 전개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좋았다. 이 소설의 미덕이라면 이렇게 긴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과 하나가 되어 알 수 없는 고통스런 미래를 함께 여행한다는 것이다. 그 여행이 마지막까지 불안한 사건의 연속이라해도 좋다. 소설을 읽는 동안 산전수전을 다같이 겪은 정든 동료들을 어찌 독자가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소설은 멋지다. 인간의 위험한 과학적 산물이 빚어낸 파멸에, 그 인간적인 파멸을 더욱 부추기는 악의 화신에, 그 악의 화신을 두려워하면서도 맞서는 인간들의 활약에, 그 인간들의 활약에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어 함께 웃고 함께 우는 나의 모습이 더해진 완벽한 환상의 소설이다. 읽고 난 뒤 내가 느꼈던 벅찬 감정을 아무도 몰라준다해도 소설책만은 알고 있으리라. 약자에게도 강점은 있으며, 강자에게도 약점은 있다는 범우주적인 진실을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만끽하고 싶다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미친 듯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다는 널뛰기 세계관을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공유하고 싶다면, 스티븐 킹의 섬세한 손길이 빚어낸 소설 <스탠드>를 읽어볼 것을 강력 추천!

<스탠드>를 시종일관 지배하는 공포스런 분위기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사라지는 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신출귀몰한 악의 화신 랜들 플랙에게서 온다. 랜들 플랙은 <The Eyes of the Dragon>, <다크 타워 시리즈> 등 킹의 여러 작품에서 계속 모습을 보이는 악의 화신이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인간이 아닌 존재인데, 스티븐 킹이 악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모든 생각들을 하나로 모아 놓은 총집합체이다. 그는 나타날 때마다 가명을 쓰지만, 항상 이름 머릿글자가 R.F.이기 때문에 척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랜들 플랙이라는 이름마저도 가명이지만 그의 존재가 가장 인상적으로 강력하게 표출된 작품이 <스탠드>이다 보니 랜들 플랙이라는 이름이 그의 대명사처럼 킹의 팬들 사이에서 인식되고 있다. 썩은 미소를 슬쩍 날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새가 어이가 없어 떨어지고 만다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화신 랜들 플랙. 앞으로도 수많은 킹의 소설 속에서 계속 만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스티븐 킹이 <스탠드>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을 때 출판사에서는 분량이 너무 많아서 제작단가가 올라간다며 원고를 적당한 분량이 되게끔 삭제해야 겠다고 말했다. 그 당시 아직은 별로 힘이 없는 작가였던 킹은 출판사의 말을 받아들이며 이왕 삭제를 해야한다면 자기가 직접 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킹은 전체 원고의 약 4분의 1 정도되는 150,000 단어를 삭제했고, 1978년에 <스탠드>는 삭제판으로 출간되었다.

그런데 그 후 삭제판을 읽고 난 수많은 팬들이 과연 처음 원고는 어땠을지 무척 궁금해하며 처음 원고를 읽고 싶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고, 킹도 삭제판을 낸 것이 아쉬웠기 때문에 결국 <스탠드>는 1990년 완전무삭제판으로 출간되었다. 킹은 완전무삭제판에서 이전에 삭제당했던 5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복원했으며, 몇몇 장면들은 새롭게 고쳐 썼다. 그리고 소설 처음부분과 끝부분을 프롤로그/에필로그 형식으로 새롭게 추가했으며, 삭제판에 나왔던 등장인물들에다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추가시켰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것들 중에서 정음문화사의 <미래의 묵시록>은 삭제판을 번역한 것이고, 황금가지 출판사의 <스탠드>는 완전무삭제판을 번역한 것이다.

위에 보이는 표지그림에서 왼쪽이 미국 삭제판, 오른쪽이 미국 완전무삭제판 표지다.

<스탠드>는 TV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졌다. 킹이 직접 각본을 쓰고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야심차게 카메오 출연도 한 작품인데, 우리나라에서는 MBC 방송국에서 <미래의 묵시록>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해서 상당히 좋은 평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같은 제목으로 국내에 비디오 출시가 되었으니, 혹시라도 동네 비디오가게에 들렀다 우연히 <미래의 묵시록> 테이프를 만나게 된다면 이런 좋은 작품을 구해서 들여다놓은 동네 비디오가게 사장님께 감사하며 힘껏 애정어린 포옹을 해주도록 하자(여사장님이라면 더욱 안성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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