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 / The Running Man

작품 감상문 2007. 5. 12. 01:42 posted by 조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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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unning Man

(1982년 리처드 바크먼 소설)

2025년의 미국은 모든 국민들에게 TV가 무상으로 지급되는 곳이다. TV에서는 하층민들이 출연하는 각양각색의 위험한 게임쇼가 하루종일 방송되어 시청자들의 생활에 아무 생각없는 웃음과 아무 생각없는 활력을 선사해 준다. 2025년의 미국 사회에서 전문기술을 지닌 사람들은 넉넉한 생활을 영위하지만, 별다른 기술이 없는 단순 노동자들은 목숨을 위협하는 열악한 근무환경과 최악의 임금에 시달리며 혹사당하고 있다.

바로 이 때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처절한 질주극이 시작된다.

벤은 한 집안의 가장이지만, 실업자가 되어 생기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18개월된 그의 딸이 병에 걸려 고통을 겪고 있다. 의사를 찾아가 약을 처방받아야 하지만 그럴 돈이 없다. TV를 보던 벤은 자신도 다른 하층민들처럼 게임쇼에 출연해서 돈을 벌어 보기로 결심한다. 벤의 아내는 남편의 목숨을 담보로 돈을 받을 수는 없다며 반발하지만, 가족을 위하려는 절박한 남편의 마음을 꺾을 수는 없었다. 벤은 게임쇼를 제작하는 방송사 빌딩으로 가서 다른 하층민들과 함께 게임쇼 출연을 신청한다. 철저한 신체검사와 심리검사를 거쳐 부적격자들은 귀가조치된 가운데, 남은 신청자들은 각양각색의 게임쇼들에 배치된다. 그 중에서도 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특별히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단 하나.

TV를 통해 방송되는 수많은 게임쇼 가운데서도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살인 게임쇼 <러닝맨>에 출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러닝맨에 출연한 사람치고 살아남은 사람은 하나도 없는 죽음의 게임쇼다. 출연자는 30일동안 전국을 도망다니며 살아있기만 하면 엄청난 상금을 받게 된다. 하지만 출연자는 헌터라고 불리우는 경찰들의 추적을 받게 되는데, 발견 즉시 살해되는 것이 게임의 규칙이다. 또 규정에 따라 출연자는 일정한 시간마다 자신의 모습을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방송국에 보내야 하는데, 보내지 않으면 평생을 지명수배당하게 된다. 러닝맨이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이유는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출연자를 발견한 시민이 신고를 하면 포상금을 받게 되는데, 그 신고가 헌터들의 출연자 사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을 때는 더 큰 포상금을 받게 된다.

이제 벤은 러닝맨 출연자로서 온 시민들과 경찰들의 살인표적이 되어 도시를 도망다녀야 한다. 과연 그는 30일동안 무사히 도망자로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The Running Man"은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먼이란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이다. 이 작품은 킹이 교사생활을 하던 시절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추운 2월의 휴가기간동안 72시간만에 완성한 소설이다. 그야말로 스티븐 킹의 왕성한 창작력을 증명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7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집필했던 영향인지, 장면전환이 짧고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100을 시작으로 장면이 바뀔 때마다 99, 98, 97...하는 식으로 카운트다운하듯이 숫자를 매겨 놓아서 도망다니는 벤의 긴박한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장면들이 도망자 벤의 시점에서 묘사되고 있어서, 읽는이가 쉽게 벤이라는 인물의 절박한 마음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The Running Man"에서는 초반부분을 벤이 방송국 고층빌딩에서 다른 신청자들과 뒤섞여 신체검사와 심리검사를 받는 장면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처음 겪는 낯선 환경에서의 초조함, 가족에 대한 그리움, 검사결과에 따라 배정받게 될 게임쇼에 대한 두려움, 하층민들을 벌레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 그 분노에 뒤따르는 삐딱한 시선 등이 뒤엉킨 벤의 심리가 건조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 장면에서는 벤이 앞으로 어떤 위치에 놓이게 될 지 벤과 마찬가지로 나도 너무도 궁금해서 가슴을 졸이며 읽어나갔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죽음의 게임쇼에 가까워지는 벤의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안타까운 심정은 벤이 드디어 러닝맨 게임쇼 무대에 올라가는 장면에서 극에 달했다. 벤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무대로 끌려 나가고 방청객들의 야유를 받는다. 그는 마치 사회에 존재해서는 안 될 위험인물처럼 다루어지고, 방송에서는 그의 이미지를 조작해서 더욱 난폭한 인물로 만들어버리고, 그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강요한다. 게임쇼에서는 위험인물인 벤이 거리로 풀려나가는 즉시 시민들의 자발적인 신고를 부탁하는 멘트가 계속 이어진다. 게임쇼를 매개로 온 나라가 한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는 상황. 이것이 미래의 모습이란 말인가?

이 작품은 물론이고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는 미래사회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예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되는 현재의 우리 사회 모습이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될 것 같다. "The Running Man"에서 나타나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열악하기 그지없는데,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도 별로 좋지는 않다. 기업들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정규직 대신에 언제든지 부담없이 해고할 수 있는 계약직 사원의 비중을 점점 늘이고 있고, 그 와중에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인재들에 대한 대우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기업들은 사회적인 책임은 전혀 안중에 없이 정리해고의 효율성만을 강조하고 있고, 직원의 대량해고를 통해 기업의 이익을 창출한다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단순무식한 방법을 애용하는 경영인을 무슨 대단한 경영의 귀재인 양 영웅시하고 있다. 그리고 상층민과 하층민간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으며, 이런 경제적인 신분은 자식들에게도 그대로 굳어지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현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자신은 중산층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미래는 어떻게 될까? 지금보다 더 나아질까, 아니면 더 나빠질까? 점쟁이가 아닌 이상은 오래오래 살아남아서 직접 미래를 목격해보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은하철도 999"라는 만화영화를 아시는지? 그 만화영화에서는 철이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은하철도를 타고 여행하는데,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몸을 뜯어고쳐 기계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서 그만 포기하고 철이는 그냥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다. 나는 정말이지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서슴없이 기계의 몸을 택하고 싶다. 그래서 백년, 천년, 만년 후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싶다. 정말 그 때가 되면 일부일처제가 무너지고 자유로운 섹스가 당연시 될까? 역시 내 관심사는 항상 빨간색이다. 에로틱한 빨간색. 미래사회에 갑자기 변태로봇이 나타나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게 된다면 그게 바로 나일 가능성이 크다.)

벤은 도망자 생활을 하는 내내 경찰들의 추적에 시달리게 되고, 그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탈출하게 된다. 그 중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비행기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가려던 순간에 경찰들은 물론이고 수많는 구경꾼들과 방송국 카메라에 둘러싸이게 되는 소설 후반부의 장면이다. 나는 이 때 그때까지 벤이 해왔던 것처럼 격렬한 폭력행사를 통해 위기를 벗어나가겠거니 했는데, 이게 웬 걸. 그는 뜻밖에도 인간적인 동정심에 호소하는 방법을 쓴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나는 정말이지 무척 신선하고 머리와 가슴이 따뜻해지는 감정을 느꼈다. 뒤통수를 때리는 느닷없는 반전이었다고나 할까. 벤에게서 매우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는 동시에, 스티븐 킹이 독자들의 감정을 쥐고 흔든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멋진 장면이었다.

"The Running Man". 이 소설은 빠른 스토리 전개와 도망자가 펼치는 목숨을 건 액션을 만끽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러닝맨에 발탁되기까지의 긴장감도 좋았고, 절박함에 몸부림치는 도피생활도 좋았고, 마지막 결말부분의 숨막히는 대결구도는 너무너무 좋았다.(감동적인 마지막 결말은 절대 밝히고 싶지 않다.) 진정한 액션소설을 원하는 분에게 이 소설을 강력추천한다. "The Running Man"은 도서출판 민을 통해 "헌터" 또는 "런닝맨"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출간되었다.

소설 "The Running Man"은 현대 액션영화의 아버지로 칭송받고 있는 아놀드 슈월츠제네거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그런데 미래사회에서 목숨을 건 게임쇼를 벌인다는 기본설정만 빼고는 원작소설과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었다. 아놀드의 굳센 액션과 추적자로 등장하는 아저씨들의 기상천외한 몸놀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엎친 데 덮친 겪으로 이 영화는 프랑스의 한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표절했다는 이유로 법원에 소송을 걸었고 프랑스 법원으로부터 표절이 확실하다는 판결을 얻어내기도 했다. 이런저런 논란이 있지만, 아놀드가 주연한 이 영화는 액션영화로서는 엉망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중학생 때 이 영화를 보았는데, 그 때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아놀드의 기백과 용기에 감동해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감상했던 기억이 있다. 이 영화는 "러닝맨"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비디오출시되어 있다. 액션영화에 조예가 깊은 동네 비디오가게라면 구비하고 있을 것이니, 웬만하면 빌려다 볼 것을 추천한다. 오래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보고 나면 테이프 대여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국내에 <런닝 맨>이라는 제목으로 DVD가 출시되어 있다.